[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자, 장미와 찔레꽃, 봄날은 간다 (2019.05.31)

푸레택 2019. 5. 31. 22:23

 

 

 

 

 

 

 

 

 

 

 

 

 

 

 

 

 

 

 

 

●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게나 친구야!

 

기어이 한 달 용돈 이십 만원을 앗아가고서야 너는 물러갔구나. 내 허리를 그토록 아프게 하더니만. 내게 평소 아무 생각 없이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깨닫게 해 주려고 찾아온 게지? 어차피 언젠가 잊을만 하면 또 찾아오겠지만, 친구야! 조금만 더디 오면 안 되겠니?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자고 다짐하건만 어디 빈틈만 있으면 슬며시 찾아오는 너의 그 치밀함을 나도 배워야겠구나.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訪問客). 내가 좋아하는 조지훈 시인은 이렇게 말했지? 정말 공감이 가는 말씀이야. 잘 가게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人生)을 얘기해 보세그려. 조지훈 선생님이야 워낙 인격이 훌륭하신 분이시니 그리 말씀하시지만 난 아니야. 네가 찾아오면 참 서글퍼진단다. 되도록 찾아오지 마시게나. 너와 차 마시며 얘기하고 싶지 않네. 그러나 어쩌겠나? 또다시 찾아오면 친구 삼아 조용조용 내 설움 네 설움을 얘기해 보자꾸나.

 

그래도 허리만 아픈 게 어디냐는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 도대체 살아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케 하는 치매(癡呆),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암(癌), 또다른 수많은 질병들 앞에 그래 허리 아픈 것 쯤이야 뭐그리 대수로우랴. 며칠만 고생하면 거뜬할 수 있지 않은가? 몸이 이프고 힘들고 지칠 때엔 더욱 삶의 경외(敬畏)를 느낀다. 우리가 늘 주고받는 인사, 건강하세요 하는 인삿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오늘은 오월(五月)의 마지막 날. 모내기한 논에 따사한 오월의 햇살이 쏟아진다. 병원 오가는 길 담장엔 온통 장미와 찔레꽃. 청명한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붉디 붉은 장미꽃은 역시나 꽃의 여왕이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소리꾼 장사익 님의 가슴 저리는 '찔레꽃' 노랫소리 들려온다. 내 마음 매료시키는 매혹적인 장미꽃을 한참 들여다보고, 알싸한 찔레꽃 향기에 취해 보는 오늘 하루는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 살아있음의 감사함, 건강(健康)의 소중함을 한 순간도 잊지 말라고 장미와 찔레꽃은 내게 속삭인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던 봄날은 가고,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던 봄날도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진다던 봄날도 간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꽃잎이 봄바람에 흩날리던 봄날은 간다. 같이 웃고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 내 인생(人生)의 봄날은 간다. 봄날이 또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듯 가버린 내 인생의 봄날도 다시 올 수 있을까? 새봄이 돌아오면 새싹이 돋아나듯 새로운 꿈나무들이 또 새봄을 노래하리. 나도 거듭 태어나서 새 사람들과 함께 새봄을 노래하리라.

 

/ 2019.05.31 김영택 씀

 

● 봄날은 간다 /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1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3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4 밤 깊은 시간엔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

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이 기러기 앞서 가는 만리 꿈길에

너를 만나 기뻐 웃고 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 문인수 시인

 

5 어두운 이 밤이 지나가면 푸르른 새벽

오늘도 그 모습 그리면서 이별에 겨워 우는 주마등 길에

별이 뜨듯 다시 만나 꽃이 피듯 함께하자

살뜰한 그 다짐에 봄날은 간다 / 임철순

 

5 꽃답던 자태도 세월 앞에 속절없더라

오늘도 처마 끝 풍경소리 바람찬 허공 저어 멀어지는데

달이 뜨면 그리웁고 달이 지면 눈물겨운

덧없는 그 시절에 봄날은 간다 / 이상교 시인

 

● 찔레꽃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찔레꽃 이야기는 흘러간 옛 노래부터 먼저 따져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1941년 일제 강점기에 나온 이 노래는 광복과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고향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로 유명해졌다. 시작 부분인 ‘찔레꽃 붉게 피는’이란 구절은 식물학자의 눈으로 보면 맞지 않는 표현이다. 원래 찔레꽃은 백옥같이 하얀 꽃이며, 토양조건이나 개체에 따라 연한 분홍색을 띠는 경우가 드물게 있을 뿐이다.

 

남쪽나라는 통상적으로 남해안을 말한다. 해안 백사장에는 어김없이 붉은 꽃이 피는 해당화가 자랐고 지방명도 찔레다. 작사자가 본 찔레는 해당화였다. 그러나 문학작품이나 노래가사에 등장하는 식물이름이 틀렸는지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그대로의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면 그만이다.

 

찔레꽃은 다른 어떤 나무보다 해맑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래서 숲속 그늘의 음침한 곳에서는 잘 만날 수 없다. 숲 가장자리의 양지 바른 돌무더기는 찔레가 가장 즐겨하는 자람터다. 개울가의 무넘기도 잘 찾아가는 곳이다. 긴 줄기를 이리저리 내밀어 울퉁불퉁한 돌무더기를 포근하게 감싼다. 그런 다음 5월의 따사로운 햇빛을 잘 구슬려 향긋한 꽃내음을 만들어낸다. 다섯 장의 꽃잎을 활짝 펼치고 가운데에 노란 꽃술을 소복이 담아둔다. 꽃의 질박함이 유난히도 흰옷을 즐겨 입던 우리 민족의 정서에도 맞는 토종 꽃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야장미(野薔薇), 우리말로 들장미다. 합창곡으로도 귀에 익은 〈들장미〉가 있고, 만화 영화 〈들장미 소녀 캔디〉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날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들장미는 우리의 찔레꽃처럼 하얀 꽃이 아니라 붉은 꽃이 많아 우리가 느끼는 정서와는 다르다. 동양의 찔레꽃 이야기는 중국의 《시경》 〈용풍〉 편에 〈담장의 찔레꽃(牆有茨)〉이란 시 한 수가 있고, 일본의 《만엽집》에도 찔레꽃 노래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찔레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를 찾을 수 없다.

 

찔레꽃은 옛사람들에게는 아픔과 슬픔을 알려주는 꽃이기도 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은 모내기가 한창인 계절이다.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시기에 흔히 가뭄이 잘 든다. 그래서 특히 이때의 가뭄을 ‘찔레꽃가뭄’이라고도 한다. 또 배고픔의 고통을 예견하는 꽃이었다. 찔레 꽃잎은 따서 입에 넣으면 아쉬우나마 배고픔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이어서 돋아나는 연한 찔레 순은 껍질을 벗겨서 먹으면 약간 달콤한 맛까지 있다.

 

가을철에 열매는 굵은 콩알만 한 크기로 빨갛게 익는다. 열매는 영실(營實)이라 하여 약으로 쓴다. 《동의보감》에는 “각종 종기와 성병이 낫지 않는 것과 머리에 나는 부스럼과 백독창(白禿瘡) 등에 쓴다”라고 했다. 뿌리 역시 “열독풍으로 종기가 생긴 것을 치료하며, 적백이질과 혈변으로 피를 쏟는 것을 멎게 하고, 어린이가 감충(疳蟲)으로 배가 아파하는 것을 낫게 한다”라고 했다.

 

찔레란 이름은 ‘가시가 찌른다’라는 뜻에서 온 것으로 짐작된다. 《동의보감》에는 열매를 ‘딜위여름’, 《물명고》에는 ‘늬나무’라고 했다.

 

찔레는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가 2미터 정도이고 가지가 밑으로 처져서 덩굴을 만든다. 또한 작은 잎 5~9개가 모여 겹잎을 이룬다. 빗살 같은 톱니를 가진 턱잎은 잎자루와 합쳐져 있다. 새하얀 꽃이 가지 끝에 5~10여 송이씩 모여 핀다. 빨간 열매는 겨울까지 남아 배고픈 산새나 들새의 먹이가 된다.

 

* 무넘기: 논에 물이 알맞게 차고 남은 물이 저절로 흘러넘쳐 빠질 수 있도록 논두렁의 한곳을 낮추어 만든 둑

 

● 장미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장미(薔薇)라고 부르는 나무는 장미과 장미속(Rosa)에 속하는데, 북반구의 한대, 아한대, 온대, 아열대에 걸쳐 자라며 약 200여 종에 이른다. 야생종의 자연잡종과 개량종으로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향기가 있어 관상용 및 향료용으로 키우고 있다. 장미는 그리스·로마시대에 서아시아에서 유럽 지역의 야생종과 이들의 자연교잡에 의한 변종이 재배되고 있었으며, 이때부터 르네상스시대에 걸쳐 유럽 남부 사람들이 주로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라고 한다. 아름다운 꽃이라면 우선 떠올리는 것이 장미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생일 선물에도 장미꽃이라면 항상 여심(女心)은 쉽게 녹아난다.

 

그런데 과연 장미는 예부터 서양인들만이 즐겨한 꽃일까? 우리의 옛 문헌에 장미가 수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옛 장미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장미가 아니고 찔레나 인가목 등의 장미속(屬)의 한 종류라는 일부 주장이 있다. 그러나 《고려사》 및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장미의 앞뒤 설명을 보아서는 현재의 장미와 거의 같은 형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도 야생 상태의 장미 종이 있으며, 《삼국사기》에도 장미라는 이름이 나온다. 모란처럼 벌써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하여 수입되어 즐겨 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지금과 같이 다양한 장미품종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부터다.

 

《삼국사기》 열전 〈설총〉 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홀연히 한 가인(佳人)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간들간들 걸어와 말했다. “첩은 눈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유유자적하옵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 내용으로 봐서는 해당화라고 생각되나 이름은 장미라고 했다. 키우고 있던 장미꽃을 아름다운 여인의 대표로 나타낸 것이다.

 

《고려사》에는 〈한림별곡〉의 일부 가사를 소개한 내용 중에 ‘황색 장미, 자색 장미’라는 대목이 나온다. 《양화소록》에는 사계화(四季花)란 이름으로 장미 키우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미꽃 이야기가 여런 번 나온다.

 

장미는 줄기의 자라는 모양에 따라 덩굴장미(줄장미)와 나무장미로 크게 나뉜다. 또한 수많은 품종이 있고 각기 다른 모양을 갖는다. 줄기는 녹색을 띠며 가시가 있고 자라면서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하나의 긴 잎자루에 3개, 혹은 5~7개의 작은 잎이 달린다. 꽃은 품종에 따라 피는 시기와 기간이 다르고 홑꽃에서 겹꽃까지 모양과 빛깔을 달리한다.

(Daum 사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