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졸작수필] 친환경 상추와 책 속에 담긴 고마움을 읽다 (2019.06.08)

푸레택 2019. 6. 8. 09:58

 

 

● 친환경 상추와 책 속에 담긴 고마움을 읽다

 

햇살 따사로운 지난 6월 5일, 신현 5인방 정기모임을 남양주 양수리에서 가졌다. 천왕님의 텃밭이 있는 부용리 친환경농장을 먼저 찾았다. 천왕님이 이곳 텃밭에서 직접 심고 가꾼 상추를 한 봉지씩 나누어 준다. 해마다 기쁨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친구가 참 고맙다. 잠시 그곳에서 머물다가 텃밭에서 가까운 두물머리 물레길을 찾았다. 

 

유유자적 두물머리 물레길을 걸으며 낭만과 느긋함을 즐긴 후 음식점 '연밭'에서 연잎밥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어 개양귀비의 향연이 펼쳐지는 남양주 '물의정원'을 찾았다. 초여름의 청명한 하늘빛도 눈부시게 곱거니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 바람에 넘실대는 꽃물결 그리고 강가 초록빛 함께 어우러진 두물머리 '물의정원' 풍경이 참으로 평온하고 정겹다.

 

초여름 개양귀비꽃을 보면 어릴 적 친구네 집 마당에 피어있던 양귀비꽃이 생각난다. 요즈음은 진짜 양귀비꽃을 재배하면 불법이지만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마당에 몇 송이씩 키우곤 했다. 그러나 그 꽃이 진짜 양귀비꽃이었는지 아니면 개양귀비꽃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지만 그땐 사람들이 모두 진짜 양귀비꽃이라고들 했다. 개양귀비는 꽃양귀비라고도 하는데 원예용으로 개랑된 개양귀비꽃에서는 당연히 아편의 재료를 얻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개양귀비를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 한나라의 시조 유방과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뤘던 항우가 자결하자 함께 생을 마감한 애첩 우미인의 무덤가에 개양귀비가 피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개양귀비꽃을 검색하다 보니 <개양귀비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시(詩)가 눈에 띈다. 이 시는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시라고 한다.

 

캐나다군 중령으로 전쟁에 참가한 군의관 존 맥크래(John McCrae)가 전사한 그의 친구 알렉시스 헬머 중위를 추모하며 1915년 5월에 썼다. 그리고 그 해 12월 펀치 매거진(Punch magazine)이라는 잡지를 통해서 첫 출판되었다. 현재 캐나다에서는 매년 종전 기념일인 11월 11일 11시에 2분간 묵념을 한 후 이 시를 낭독한다. 1차 세계 대전 때 전장터에서 캐나다군 중령 존 맥크래가 쓴 시 〈개양귀비 들판에서〉가 유명해지면서 영연방 국가에서는 영령 기념일에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꽃으로 개양귀비를 쓴다고 한다.

 

믿음 충만한 안수집사 호헌 샘은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섬기는 일터'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직접 편집하고 제작하여 모임이 있을 때마다 몇 권씩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과 믿음을 간직한 친구다. 또한 호헌 샘에게서 '띵동, 박 부장입니다!' 라는 제목의 책도 한 권 받았다. 베이징에서 예루살렘까지 80일 간 실크로드 선교 현장을 다녀온 르포의 간증을 기초하여 쓴 소설로 복음의 본질과 교회론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무척 흥미로워 몇 시간만에 뚝딱 다 읽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오늘은 친구가 가꾼 부용리 친환경 상추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평신도 교회의 모델을 제시하는 간증 소설도 읽고, <개양귀비 들판에서>라는 시(詩)도 찾아 읽으니 고마움과 함께 몸과 마음, 영혼까지도 맑아지고 치유되는 듯하다.

 

/ 김영택 2019.06.08 씀

 

● 개양귀비 들판에서 / 존 맥크래(1872~1918)

 

플랜더즈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는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

그리고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저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그 노래 잘 들리지는 않네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바라보았네

사랑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건만

지금 우리는 플랜더즈 들판에 이렇게 누워 있다네

 

우리의 싸움과 우리의 적을 이어받으라

힘이 빠져가는 내 손으로 그대 향해 던지는 이 횃불

이제 그대의 것이니 붙잡고 높이 들게나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 저 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랜더즈 들판에 양귀비꽃 자란다 하여도

 

● In Flanders fields / John McCrae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We are the dead. Short days ago

We lived, felt dawn, saw sunset glow,

Loved, and were loved, and now we lie

In Flanders fields

 

Take up our quarrel with the foe:

To you from failing hands we throw

The torch; be yours to hold it high

If ye break faith with us who die

We shall not sleep, though poppies grow

In Flanders fields

 

● '플랜더스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캐나다 군의관 존 맥크래 중령이 1915년 전우의 죽음을 기리며 쓴 시다. 존 맥크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이 처절한 전투를 벌었던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의 들판에 피어있는 개양귀비꽃들을 보며 전사한 전우들을 추모했다. 이 시(詩)를 계기로 양귀비꽃은 유럽과 영연방 국가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추모하는 상징꽃이 됐다. 2018년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세계 각국 정상들은 가슴에 빨간 양귀비꽃을 달았다. 플랜더스의 양귀비는 아편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로 마약 재료가 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흔히 ‘양귀비’하면 중국 당나라 현종의 후궁 양귀비와 아편의 재료로 쓰이는 양귀비꽃을 떠올린다. 그럴 만도 하다. 후궁 양귀비와 양귀비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양귀비라는 꽃 이름은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 양귀비의 미모처럼 아름답고 위험하다는 뜻이다.

 

당 현종은 즉위 초 ‘개원(開元)의 치(治)’라고 불릴 정도로 태평성세를 이뤘지만 후궁 양귀비에 빠진 후 정사(政事)를 등한시 했다. 그로 인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안록산의 난’으로 나라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양귀비꽃도 백성을 피폐하고 만들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청나라 말기 중국인들은 영국 상인들이 판매한 아편에 중독됐고, 결국은 아편전쟁으로 서구 열강에게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우리 선조들이 이 꽃에 양귀비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절묘하다. (제주신보 발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