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여행] (9) 홍릉수목원 홍릉숲 4월 풍경: 호장근, 솔송나무, 구상나무, 다화개별꽃, 미나리냉이, 불두화, 돌단풍 (2019.04.21)

푸레택 2019. 4. 21. 23:12

 

 

 

 

 

 

 

 

 

 

 

 

 

 

 

 

 

 

 

 

●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수목원 홍릉숲 4월 풍경: 호장근, 솔송나무, 구상나무, 다화개별꽃, 미나리냉이, 불두화, 돌단풍 (2019.04.21)

 

● 구상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 세계2)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작은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이렇게 좁은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좁은 곳에서만 자라다가는 살아남기가 어려우니 당연한 일일 터다. 그래도 드물게 우리 땅에서만 자라는 식물이 있다. 구상나무와 미선나무, 개느삼이 대표적이지만, 큰 나무로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구상나무다.

 

현재 구상나무의 자람 터가 모두 높은 산꼭대기라는 사실은 구상나무의 미래가 험난할 것임을 암시해준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남부 고산들의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구상나무는 원래부터 따뜻한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 지구가 빙하기일 때 구상나무는 산 아래에서도 널리 자랐다. 그러나 빙하가 북으로 밀려나고 기온이 높아지자 구상나무는 차츰차츰 온도가 낮은 산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맨 꼭대기까지 올라와 버린 것이다. 더 물러날 곳이 없으니 구상나무는 멸종위기 식물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죽어가는 구상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한라산이나 지리산 꼭대기에서 처량하게 형해(形骸)만 남은 고사목들은 대부분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를 처음 찾아내 학명을 붙이고 학회에 보고한 사람은 윌슨(Ernest Henry Wilson, 1876~1930)이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아놀드 수목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1915년경 제주도에서 구상나무를 처음 채집하여 1920년에 신종으로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우리나라 식물의 대부분을 조사하여 현대적인 분류를 한 일본인 나카이(Nakai)는 그때까지도 구상나무가 분비나무와 같은 나무로 알고 있었다. 사실 전나무, 분비나무, 구상나무는 같은 전나무속(屬)으로서 형태가 비슷하다. 특히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매우 닮았다. 분비나무는 솔방울을 이루는 비늘의 뾰족한 돌기가 곧바르고, 구상나무는 뒤로 젖혀지는 것이 차이점이다. 식물 관찰로 날을 지새운 나카이지만 이 간단한 특징을 놓치는 바람에 윌슨에게 새로운 종을 찾아내는 영광을 빼앗겨 두고두고 억울해했다고 한다.

 

구상나무는 분비나무를 선조로 하여 생긴 파생종이라고 한다. 당연히 분비나무와 비슷한 점이 많고, 구상나무 씨를 심으면 분비나무가 다수 나온다. 유전 다양성이 낮고 유전자 소실 위험성도 높아 구상나무의 보존에 보다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구상나무는 열매의 색깔에 따라 푸른구상, 붉은구상, 검은구상나무 이렇게 3품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구상나무는 키 20미터, 줄기둘레가 한 아름이 넘게 자랄 수 있으며 줄기도 곧바르다. 전나무와 마찬가지로 좋은 재질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쓰임이 있으나 벨 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한때 남한의 높은 산에는 구상나무가 숲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지리산이었는데, 1960년대 말 지리산에 제재소까지 차려 놓고 굵은 구상나무를 도벌한 사건은 우리나라 산림 파괴의 잊지 못할 사례로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구상나무는 어릴 때부터 원뿔형의 아름다운 수관을 갖고 있으며, 잎이 부드럽고 향기까지 갖고 있어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다. 우리나라 구상나무는 프랑스 신부인 타케(Emile Joseph Taquet, 1873~1952)와 포리(Urbain Faurie, 1847~1915) 등이 1900년대 초에 전국에 걸쳐 수많은 식물을 채집하여 유럽과 미국에 보낼 때 함께 시집갔다. 이들이 보낸 식물들은 오늘날 종자 전쟁이라고 할 만큼 각국이 자기 나라 식물의 종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에서 본다면, 곱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 건너간 구상나무는 계속 품종개발이 되어 ‘명품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하고 있다.

 

● 솔송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 세계2)

 

솔송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만 자란다. 같은 종(種)이 일본에도 있다. 북미에서 자라는 미국솔송나무는 좋은 재목을 생산하는 큰 나무로 유명하다. 울릉도 솔송나무는 조선 정조 18년(1794)에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이 울릉도를 조사하고 올린 보고서에 향나무, 잣나무와 함께 처음 등장한다. 원전에는 전나무를 뜻하는 ‘회(檜)’라고 기록하였으나, 옛사람들이 전나무와 솔송나무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또 울릉도의 식생과 전후관계를 따져볼 때 솔송나무임을 알 수 있다.

 

솔송나무는 울릉도와 일본에만 있고 한반도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아득한 지질시대에 일본과 울릉도가 연결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파도에 씨가 떠밀려 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새가 날라준 것인지는 하느님밖에 모를 일이다.

 

울릉도는 아주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공도(空島) 정책을 펼 때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가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1883년 54명의 이주민이 처음 들어가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울릉도는 이름 그대로 정말 ‘숲이 울창한(鬱) 언덕(陵) 섬’이었다. 구한말 울릉도 산림의 벌채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다투다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인들이 울릉도의 아까운 산림을 송두리째 베어가 버렸다.

 

울릉도의 솔송나무는 바닷가에 가까운 곳보다 조금 고도가 높은 곳에서 주로 자란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곳도 너도밤나무, 섬잣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 50호로 지정된 태하령 부근이다. 일본에서도 자라는 곳이 높은 산능선이나 바위가 많은 장소이며, 떼거리로 모여서 숲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고 한 그루씩 띄엄띄엄 자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의 태하령 자생지에서 자라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솔송나무는 늘푸른 바늘잎나무로 키 30미터, 둘레가 두 아름이 넘게 자랄 수 있는 큰 나무다. 최근 태하령 부근에서는 키 17미터, 둘레가 두 아름에 이르는 고목이 발견된 바도 있다. 잎은 선형(線形)으로서 짧고 납작하며 끝이 약간 오목하다. 잎 표면은 윤기가 있는 짙은 초록빛이고, 뒷면의 숨구멍은 하얀 두 줄의 선으로 보인다. 5월에 꽃이 피고 나면 10월경에 엷은 갈색의 자그마한 솔방울이 열린다. 울릉도 개척민들이 울릉도의 깊숙한 곳에서 자라는 솔송나무와 처음부터 친숙해졌을 리는 없고, 겨울날이 되어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모습이 눈에 잘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설송(雪松)나무’로 불리다가 지금의 ‘솔송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대관》주에는 솔송(率松)이란 표기도 하였으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솔송나무가 거의 희귀수종에 가까운 나무이나 북미에서는 목재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나무다. 미국솔송나무는 알래스카 남부에서부터 캐나다 남서부, 미국의 북서부 오리건 주까지 분포하며, 자라는 곳에 따라 서부솔송나무(Western hem-lock)와 동부솔송나무(Eastern hemlock)로 나누기도 한다. 미국솔송나무는 키 50~60미터, 직경이 1~2미터에 달하며 미송(美松, Douglas fir)과 함께 대형 목조구조물의 기둥 등 구조용재(構造用材)로 널리 쓰인다.

 

영명인 ‘햄럭(Hemlock)’은 서양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초본식물에 ‘포이즌햄럭(Poison hemlock, 학명 Conium maculatum)이란 독초가 있는데,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의 재료가 바로 이 식물이었다는 것이다. 북미대륙을 처음 찾아간 유럽식물학자들은 독초인 햄럭과 비슷한 향을 가진 미국솔송나무를 햄럭이라 불렀다고 한다.

 

● 백당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세계1)

 

백당나무는 낮은 곳은 물론 높은 산까지 추위에 잘 적응하여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자그마한 나무다. 적응력이 높지만 그래도 계곡의 입구나 숲의 가장자리 등 약간 축축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한다.

 

늦봄이나 초여름에 피는 꽃은 화려하진 않아도 꽃이 피어 있는 모양새가 특별하여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가지 끝마다 황록색의 자잘한 진짜 꽃 수십 개를 가운데에다 동그랗게 모아 두고, 가장자리에 큰 동전만 한 새하얀 가짜 꽃이 흰 나비가 날개로 감싸듯 에워싸고 있다. 달리 보면 흰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둔 모습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접시꽃나무’라고 부른다.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꽃 하나하나는 아래가 붙어 있는 통꽃인데, 가운데에 당연히 있어야 할 씨방이나 암술, 수술 모두 없다. 그래서 이런 꽃들은 무성화, 중성화, 꾸밈꽃(장식화)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한마디로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석녀(石女) 꽃’이란 뜻이다. 무엇하러 쓸데없는 석녀 꽃을 피우는 것일까? 이는 안쪽의 진짜 꽃에 곤충이나 나비가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새하얀 큰 꽃잎을 수평으로 활짝 피워 더 크게 더 넓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것은 마치 “손님아, 내가 석녀임에 실망 말고 안으로 들어오렴. 암술, 수술 다 갖추고 달콤한 꿀도 있는 꽃이 잔뜩 있으니 제발 떠나지 말아다오” 하는 애원이 서려 있는 듯하다. 이처럼 치열한 숲속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생존전략이 있어야만 멸종의 길을 피해 갈 수 있다.

 

백당나무 꽃이 가지 끝마다 피어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하얀 꽃 두름이 마치 작은 단(壇)을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 백단(白壇)나무로 불리다가 백당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백당나무는 키가 3~5미터 정도 자라는 작은 나무이며, 밑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포기처럼 자란다. 아이 손바닥만 한 잎은 달걀모양이며 흔히 셋으로 갈라지고 불규칙한 톱니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긴 잎자루 끝의 잎이 달리는 부위에는 가끔 꿀샘이 있어서 개미가 꼬이기도 한다. 초가을에 들어서면서 잎은 빨간 단풍으로 물들고 콩알 굵기만 한 열매는 빨갛게 꽃자리마다 수없이 열린다. 즙이 많아 먹을 수 있지만 맛이 시큼하여 사람은 거의 먹지 않는다. 겨울 내내 열매가 그대로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산새들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유럽과 시베리아에서 자라는 서양백당나무는 열매로 젤리를 만들고 껍질은 이뇨제로 사용한다.

 

초파일을 전후하여 대웅전 앞뜰에는 새하얀 꽃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불두화(佛頭花)를 만날 수 있다. 작은 꽃 수십 개가 모여 야구공만 한 꽃송이를 만드는데, 자리가 비좁아 터질 것같이 피어난다. 처음 꽃이 필 때는 연초록 빛깔이며, 완전히 피었을 때는 눈부시게 하얗고, 꽃이 질 무렵이면 연보랏빛으로 변한다. 꽃 속에 꿀샘은 아예 잉태하지도 않았고, 향기를 내뿜어야 할 이유도 없으니 벌과 나비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사가집(四佳集)》주을 비롯한 조선 후기 문신들의 시에 가끔 불두화가 등장한다. 백당나무의 돌연변이로 불두화가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 호장근 (Fallopia japonica Ronse Decr.)

 

호피처럼 생긴 줄기를 가진 야생화

어릴 때의 줄기에 자주색 반점이 있어서 호피처럼 생겼다고 호장근(虎杖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장근보다 키가 큰 왕호장근, 꽃이 붉은 붉은호장근 등의 유사종이 있다.

 

싱아라는 이명도 있으나 싱아는 별도로 있다. 싱아는 마디풀과로, 줄기는 1m 정도로 곧게 자라며 피침형의 잎이 어긋나게 달린다. 호장근은 싱아와 키가 거의 비슷하고 잎도 어긋나지만 잎의 모양이 난상 타원형인 것이 다르다.

 

원줄기는 곧게 또는 비스듬히 자라며 거칠고 크다. 줄기는 원주형으로 속이 비어 있다. 어릴 때는 적자색 반점이 군데군데 있고 마디에는 원줄기를 둘러싼 턱잎이 있으나 탈락하기 쉽다. 뿌리를 호장이라 하는데, 근경은 목질이며 곤봉 모양이고 길게 벋으면서 군락을 형성한다.

 

6~8월에 줄기의 위쪽이나 잎겨드랑이에 흰색 또는 담홍색 꽃이 피는데, 암꽃과 수꽃이 따로 달린다. 꽃줄기는 짧고 작으며 찢어진 꽃잎은 길이가 약 0.3㎝으로 5장이다. 이중 바깥쪽 3장은 뒷면에 날개가 있으며 암꽃이 자라서 열매를 둘러싼다. 9~10월경에 길이 2~2.5㎝의 달걀형 열매가 달린다. 열매의 색은 암갈색이다.

 

마디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서 자라며 중국과 일본, 타이완에도 분포한다. 햇볕을 많이 받고 부엽질이 많으며 물 빠짐이 좋은 경사지에서 자란다. 땅속줄기는 약용, 어린 줄기는 식용한다. 호장근을 재배하는 농가가 꽤 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