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낙화(落花) 조지훈, 낙화 이형기, 당신은 누구십니까 권경업, 기다림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권경업 (2019.04.18)

푸레택 2019. 4. 18. 07:18

 

 

 

 

 

 

 

 

 

 

 

 

 

 

 

 

 

 

 

 

●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珠簾)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歸蜀道)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ㅣ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도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풀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 기다림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 권경업

 

가버린 봄은

돌아와 다시 꽃 피운다지만

떠나간 그대는, 다시

오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두고 떠날 때

말하진 않았어도 오죽 했을 그 마음

기꺼이 멀어져 그리움 되어준

내 삶의 소중한 한 사람이여

그대와의 인연 다했다는 걸 알면서도

저 윤중로 벚꽃 봄비에 다 지도록

나는 기다립니다.

 

기다림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지는 꽃그늘의 쓸쓸함과

세상 숱한 설움의

견딜 수 있는 힘이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