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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 (10) 자전거 여행

푸레택 2022. 9. 19. 12:28

[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10)] 자전거 여행: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newspower] [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10)] 자전거 여행

  박영 화백이 아뜰리에에서 내려오고 있다.     ©뉴스파워    시골에 오면서 자전거 타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오늘은 지인을 따라 시골길을 마음껏 달렸다. 신작로가 아닌 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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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오면서 자전거 타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오늘은 지인을 따라 시골길을 마음껏 달렸다. 신작로가 아닌 아스팔트는 어릴 적보다 훨씬 세련되고 자전거 타는 입장을 편하게 해 주었다. 철새들의 휴양지 고천암은 찔레꽃 향기까지 있어 내 유년의 기억을 더욱 짜릿하게 해 준다.

아버지는 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보지 못했다. 내가 타기에는 안장이 너무 높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나게 자전거를 탄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자전거 핸들에서 양손을 떼고는 야호! 하면서 자전거를 마구 몰다가 언덕길에서 급속도로 내달리다가 넘어져 얼굴이 깨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자전거 타는 실력이 그리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자전거 동호회를 따라 꽤 멀리까지 라이딩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자전거 타는 실력이 그리 자부할 만한 실력이 못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 있다.

시골에 와서 이곳 동네 지리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마을에서 사귄 이웃이 자전거 동호회에서 라이딩을 나간다고 하여 무작정 따라나섰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자주 타지 않았지만 자전거 타는 일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처음엔 그럭저럭 사람들을 따라 뒤처지기도 하면서 처음 가보는 미지의 땅을 달리는 쾌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차갑지 않은 바람은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뒷덜미를 가볍게 스치고 답답한 가슴까지 뻥 뚫리는 것이 정말이지 신나게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자전거 바퀴를 빠르게 굴려주었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를 달려보는 것이 실로 얼마만인가?

하지만 동호회 사람들은 자전거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산채 비빕밥을 점심으로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힘이 부치고 그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 그런지 엉덩이와 허벅지 쪽이 아프고 힘에 부쳤다. 잠시만 속도를 늦춰도 선두는 저만큼 앞서 내달리고 갈림길에선 보이지도 않았다. 몇 번을 선두를 못 따라가다가 그만 나는 일행들을 놓치고는 어디로 가야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졌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너무 멀리 왔기에 돌아가는 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 지도를 검색해 볼 수도 없었고, 그나마 이웃 사람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태였다. 주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어둠으로 가득한 하늘만 올려다 볼 뿐이었다. 아침에 신나게 달렸던 길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일행을 따라가기가 급했을 것이니 지리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가기는 하지만 가다 보면 집에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돌아와 다른 길로, 또 다른 길로 더듬더듬 달리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 났다.

달리지 못하는 자전거를 끌고 컴컴한 어둠을 친구삼아 걷고 또 걸었다. 그런 와중에도 일행들은 연락이 없었다. 사람들이 어찌 이리도 야속하단 말인가 싶기도 하여 왈칵 서러움이 올라왔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게도 책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은 그래도 라이딩을 할 만한 자전거를 가지고 있고 옷매무새를 갖추었는데 나는 평상복에다가 자전거라고는 보통 사람들이 타는 자전거를 끌고 나왔으니 그 사람들이 볼 때는 그리 반겨줄 만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은 마구 달리고 싶은데 저 뒤에서 힘들게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뜻대로 달리기를 못했을 듯싶다. 배려를 해 준다고는 했지만 기다릴 만큼 기다려줬다고 생각을 했지만, 딱 그만큼 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내 꼴을 생각해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자전거 꼬라지 하며 옷 꼬라지 하며 저기 맨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굴려 달리는 나, 이 모습을 영화로 만들어도 명작이 될 듯하지 않은가? 늦은 밤이 되어 집에 도착했다. 캄캄한 어둠만 가득 채운 마당에 자전거를 세웠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글=박영 화백(홍대 미대 서양학과, 프랑스 유학, 크리스천정신문화연구원장)ㅣ뉴스파워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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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9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