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살며 사랑하며] 특급 민원인

푸레택 2022. 7. 21. 20:47

[살며 사랑하며] 특급 민원인 (daum.net)

 

[살며 사랑하며] 특급 민원인

전화가 왔다. 몸을 꼿꼿이 세워 받았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대를 정하고, 그가 매일 아침 방문한다는 그 공원에 딱 맞춰 도착했다. 그는 가방에서 얼음 가득한 편의점 아이스커피를 꺼내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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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다. 몸을 꼿꼿이 세워 받았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대를 정하고, 그가 매일 아침 방문한다는 그 공원에 딱 맞춰 도착했다. 그는 가방에서 얼음 가득한 편의점 아이스커피를 꺼내주곤, 이 공간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한 뒤, 야외체육시설의 문제점과 부족한 시설 종류 및 바닥면 조치 방안까지 꼼꼼히 제시하고 보완을 요청했다. 나는 조만간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공원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공원 자원봉사자 중 한 분이었다.

최악의 민원인은 자신에게만 애정을 쏟는 분이다. 주변은 아랑곳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원이 무조건 맞춰주기를 바란다. 그럼 최고는? 공원에 애정을 쏟는 분이다. 담당자보다 더 공원을 속속들이 알고, 다중의 관점에서 공원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공원 이용‘객(客)’이 아니라 이용‘주(主)’라 할 실질적 주인이다. 최고의 민원인보다 더 높은 특급 민원인이 자원봉사자다. 평소 공원에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아낌없이 나누는 분들이기에 그 민원은 더 무겁게 받아들인다. 서울 양천구는 공원 자원봉사자 100여분이 프로그램 운영, 자연생태계 조사와 교육, 가드닝, 도시농사 등 분야별로 활동 중인데 향후 놀이, 플로깅, 동화구연, 촬영, 세밀화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분들이야말로 이용주를 뛰어넘는 공동 ‘운영주’이자 공원 거버넌스의 정수다.

중년 또는 은퇴 후 삶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공원에 봉사할 것을 조언드리면 대개 재능이 없다며 손사래 친다. 수십년 현업에서 일한 당신의 경험과 능력은 어디나 쓰임새가 많겠지만 특히 지역에서, 공공공간에서, 다양한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하다.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 공헌과 그로 인해 사회로부터 받는 존경, 그 과정에서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은 부쩍 길어진 우리네 생애에 필수 요소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내어 삶터 주변의 멋진 공원을 찾아보고 플로깅처럼 가벼운 자원봉사부터 시작하시길. 늘 특급 민원인으로 모실 테니.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ㅣ국민일보 2022.07.13

/ 2022.07.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