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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만 열한 살의 의복생활

푸레택 2022. 7. 21. 20:40

[살며 사랑하며] 만 열한 살의 의복생활 (daum.net)

 

[살며 사랑하며] 만 열한 살의 의복생활

만으로 열 살까지는 옷소매와 앞자락이 급식을 먹다 흘린 음식물로 얼룩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같은 반 거의 모두가 옷 구석구석에 끈적거리는 것을 묻히고 다녔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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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열 살까지는 옷소매와 앞자락이 급식을 먹다 흘린 음식물로 얼룩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같은 반 거의 모두가 옷 구석구석에 끈적거리는 것을 묻히고 다녔다. 하지만 만 열한 살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또래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그리고 그 집단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당사자로서 차림새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미용실에 방문한 것도 그때였다.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엄마를 데리고 오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은 그 나이 때부터 이십대 중반까지도 유효했으니, 성난 (남의) 부모를 맞아야 했던 미용인들의 고충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은 차림새에 관해 부모라는 개념에 의식적으로 졸졸 쫓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따돌리는 즐거움은 더욱 컸다.

부모님 없이 재래시장을 방문한 것도 만 열한 살 때쯤의 일이다. 재래시장 안에는 생선과 야채 가게도 보였지만 학교 근처엔 없는 거대한 문방구와 스티커 사진관, 노래방, 오락실, 곱창집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옷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만 열한 살 이전까지 옷차림에 큰 관심은 없었어도 불만은 넘쳐 흐르기 일보 직전이었다. 씀씀이가 작고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엄마가 늘 벼룩시장에서 헌 옷만 사다주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량으로 진열된 색색의 질 낮은 티셔츠들은 새것을 직접 사는 대단한 기쁨과 용돈을 지독히 모아야 할 이유를 가져다주었다.

부모님을 다시 대동해야 했던 것은 겨울이 되고 모두가 스포츠 브랜드 점퍼를 입었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을 가열차게 졸랐고 결국 아버지와 브랜드 매장에 입장했다. 매장의 불빛이 너무 환해 도망치고 싶었다. 두 직원이 우리의 꽁무니를 떠나지 않아 금세 원치 않는 점퍼를 사서 나왔다. 그렇게 어떤 어린이와 청소년은 부모에 쫓기고 따돌리다 어느 날 그들의 손을 꽉 잡게 되는 것이었다.

이다울 작가ㅣ국민일보 2022.07.18

/ 2022.07.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