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통과한 나의 부모 세대는 초가집에서부터 고층 아파트까지 주거 공간을 옮겨갔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 키즈로 자랐다. 획일화된 아파트의 경관은 한국의 압축적 성장을 보여준다. 그 성장 아래 나의 유년은 균질한 풍경으로 가득 찼다. 나의 아파트 단지는 한 블록 너머 다른 회사가 지은 아파트 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차장과 주황색 덮개를 가진 대형 쓰레기통, 놀이터와 경비실, 고동색 벤치 등이 비슷한 모양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조경 또한 마찬가지. 철쭉과 팬지가 둥근 밥그릇 모양의 대형 화분에 심어져 있었고, 같은 종의 회양목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그 녹색의 작고 딱딱한 잎들을 한 움큼 뜯어내는 작은 악취미가 있었다.
도시의 틈을 발견한 것은 첫 자취 후 아픈 몸으로 집 근처를 조금씩 산책할 무렵이었다. 나는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었고, 그 지역은 낮은 빌라로 가득했다. 높이는 일정했으나 작은 빌라마다 다른 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채로운 빌라를 지나치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갖가지 의자였다. 서로 다른 디자인의 평상이나 가정용 식탁 의자가 아스팔트 위에 가득했다. 나는 낮은 빌라 앞 의자에 앉아 바둑을 두는 노인들, 그저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 평상 위에 고추를 말리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물이 수거되지 않고 다양한 이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도시의 유령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의자를 본 경험도 있다. 사용자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모습을 토지의 값이 오르지 않아 균질화·획일화하는 것을 포기한, 버려진 도시로 보아야 할까? 그러나 나는 아스팔트를 점령한 사물들을 보며 누구의 사유지도 아닌 공유 공간의 가능성을 보았다. 도시의 틈, 토지의 틈이 생긴 것이다. 사적인 사물로 취급되는 가정용 가구가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은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다울 작가ㅣ국민일보 2022.07.11
/ 2022.07.21 옮겨 적음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며 사랑하며] 옥수수와 벼 (0) | 2022.07.21 |
---|---|
[살며 사랑하며] 만 열한 살의 의복생활 (0) | 2022.07.21 |
[살며 사랑하며] 햇볕과 그늘 (0) | 2022.07.20 |
[살아가는 이야기] “부럽지가 않어” 명랑한 노년으로 사는 법 (0) | 2022.07.20 |
[사색의향기] 해오라기와 해오라기난초 (0) | 2022.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