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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푸레택 2022. 5. 27. 18:05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daum.net)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듣고 읽어 알기는 어려워도 직접 겪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나를 바꾼다. 우리 각자뿐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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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듣고 읽어 알기는 어려워도 직접 겪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나를 바꾼다. 우리 각자뿐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 겪은 모두의 경험은 우리 사회를 바꾼다. 1980년 광주, 2014년 세월호 등이 그렇다. 겪고 나서 마주한 세상은 겪기 전과 달라진다. 여럿이 공유한 시공간의 한곳에서 함께 겪은 것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빚어낸다. 나나 우리나 겪고 나면 달라진다.

 

과학에도 경험이 중요하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 수식을 외우고 있다 해서 고전역학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이를 적용해 문제를 직접 풀어보는 경험을 꼭 갖도록 하는 것이 대학교 물리학 수업의 기본이다. 다양한 상황에 이론을 고민하며 적용해보는 경험을 겪고 나서야 물리학 고수가 된다.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겪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깨달음의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 알려면 먼저 겪을 일이다.

요즘 널리 각광받는 인공지능도 그렇다. 사람들이 직접 쓴 손 글씨 숫자 이미지 빅 데이터가 공개되어 있다. “이렇게 쓴 것은 1이고 저렇게 쓴 것은 5야.” 많은 손 글씨를 보여주면서 각 이미지가 어떤 숫자에 대응하는지, 학습데이터와 정답을 함께 알려주며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방식을 지도학습이라 한다. 우리 인간이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건 고양이, 저건 강아지.” 다양한 예를 경험하고 나면 아이가 둘을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도 첫 학습 단계에서 인간 프로기사의 기보로 배웠다. “아, 바둑판이 이런 모습일 때 인간 바둑고수는 이곳에 바둑알을 놓는구나.” 첫 단계 지도학습이 끝난 알파고가 경험으로 배워 체득한 깨달음이다.

인간 바둑고수와의 지도 대국만으로는 알파고가 최고수의 실력을 뛰어넘기는 어렵다. 알파고의 두 번째 학습 단계에서는 강화학습을 이용했다. 강화학습은 인간이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닮았다. 자전거 타는 법은 책으로 읽어 배울 수 없다. 자전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자전거를 타보는 것이다. 이렇게 타면 자전거가 쓰러지고 저렇게 타면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겪어, 많이 넘어져보고 나서야 우리는 자전거를 잘 타게 된다. 인공지능의 강화학습에서, 인간이 설정한 목표는 인공지능에 주어지지만,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은 인간이 알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며, 인공신경망의 내부 상태를 조금씩 바꿔가며 인간이 설정한 목표에 조금씩 다가서는 것이 강화학습이다.

길쭉한 막대를 쓰러뜨리지 않고 오래 세우는 것을 스스로 강화학습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있다. 유튜브에서 “Swing-up and balancing”으로 검색해 독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는 서투른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더 경험으로 배워 결국 쓰러뜨리지 않고 막대의 균형을 유지하는 멋진 실력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단계의 강화학습에서 알파고는 자기가 자기와 바둑을 둔다. 집을 더 늘려 승률이 높아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내부 상태를 조금씩 바꿔간다. 프로그램을 작성한 과학자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해도, 최고수 바둑기사를 가뿐히 이기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사람이나 요즘 인공지능이나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나서야 목표에 도달한다.

과거 겪은 수많은 경험이 쌓여 우리의 현재를 만들고, 앞으로 다가올 겪음의 두름이 우리의 먼 미래를 만든다. 인공지능도 최종 목표에 단박에 도달하지 못해 조금씩 스스로를 바꿔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서듯이, 우리도 매번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말고 배워 조금씩 스스로 바꿔 나갈 일이다. 요즘 세상이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이 큰 걱정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인 전쟁을 보며, 많은 이를 고통으로 내모는 세계 곳곳의 폭압적인 정권을 보며 분노하기도 한다.

이 작은 지구를 공유하는 같은 생명 종 호모사피엔스 여럿이, 사는 곳이 어딘지를 기준으로 아웅다웅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갈등하며 자꾸 우리와 저들을 나눈다. 인류의 먼 미래에 눈 질끈 감고 코앞의 작은 이기적 이익에만 골몰하는 분열된 세상에 참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겪고 나면 달라질 것이라 믿으며 희망을 끈을 놓지 말자. 그래도 여럿이 눈 부릅떠 보고 겪고 배워 미래를 함께 바꿀 일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22.05.26

/ 2022.05.2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