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마스크 착용 잘하는 이유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20)] (daum.net)
놀이터에 가려고 운동화를 신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나간 아이가 황급히 되돌아옵니다. 마음이 급해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현관 수납장에서 마스크를 뽑아 귀에 걸고 뛰어나갑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어떤 날은 마스크를 안 쓰고 놀이터에 나왔다며 친구의 엄마를 통해 “마스크를 가져와 달라”고 전화를 해온 적도 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딜 가든 마스크를 빼놓고 나갈 수 없는 요즘입니다. 언제 어디서 코로나19 환자와 마주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달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 여파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마스크 착용으로 이어집니다. 보건학적 측면에서 마스크는 외부로부터의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수단입니다. 나아가 타인을 감염시키는 것을 막아줍니다. 전문가들은 다수가 마스크를 착용하면 지역사회 감염을 막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스크는 이제 ‘생활’ 필수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존’ 필수품이 됐습니다.
최초의 방역 마스크는 중국에서 시작
마스크는 병균이나 먼지를 막기 위해 입과 코를 가리는 물건을 말합니다. 일터 또는 병원 등 건강에 위해가 되는 곳에서 마스크는 오래전부터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입과 코만 막는 사각형의 마스크가 등장한 것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스펀지를 마스크로 사용해 적군이 피운 불과 연기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마스크는 현재의 마스크 모습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로마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동물의 방광으로 만든 방진 마스크를 사용했습니다. 방광으로 만든 마스크는 로마의 광산 노동자들이 광산 내부의 납 산화 먼지를 흡입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기 위해 사용됐는데 전체 얼굴을 감싸는 방식이었습니다.
16세기에는 이탈리아의 화가·건축가·조각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젖은 천을 사용한 마스크를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이 마스크는 화학무기의 독성물질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마스크였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 때 의사들은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흑사병은 당시 5년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쓸어갈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특히 중세에는 병의 원인이 세균 때문이라는 이론이 정립되기 전으로, 전염병이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고 믿었습니다. 의사들이 마스크를 쓴 이유도 나쁜 공기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의사들은 마스크의 긴 부리 부분에 허브 등을 넣어 공기를 정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정화된 공기를 마시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은 것입니다.
현대적 모양의 보건 마스크를 개발한 것은 중국인 의사였습니다. 흑사병은 유럽만 휩쓴 것이 아니라 1910년 즈음엔 북만주 지역까지 휩쓸었습니다. 당시 중국에 있던 의사 우롄더는 흑사병 환자를 진료하고 해부하는 경험을 하면서 흑사병이 공기를 통해 병균에 감염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롄더 박사는 거즈와 무명천을 겹겹이 쌓아 코와 입을 막은 뒤 길게 자른 거즈로 얼굴과 머리통을 감아 고정했습니다. 당시 만주에서는 이 마스크를 ‘우롄더 마스크’라 불렀습니다. 우롄더가 개발한 초기 형태의 헝겊 마스크는 1918년 유럽과 미국에 스페인 독감이 돌 때 널리 퍼졌습니다.
부직포를 이용해 공기 필터를 만든 효율적이면서도 값싼 마스크는 1930년대 들어 개발됐습니다. 보건용 마스크와 일반 마스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필터’에 있습니다. 보건용 마스크에는 유해 물질을 막을 수 있는 특수 필터가 장착돼 있습니다. 보건용 마스크는 부직포에 고압의 전류를 흘려 미세조직이 정전기를 띨 수 있게 만듭니다. 정전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조직에 흡착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보통 전기는 전선을 통해 흐릅니다. 반면 정전기는 한 곳에 고여 있는 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고여 있는 전기에 마찰이 발생하면 정전기가 발생합니다. 물체를 이루는 원자의 주변에 전자가 돌고 있는데 원자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전자들은 마찰을 받게 되면 다른 물체로 쉽게 이동합니다. 이때 전자를 잃은 쪽은 플러스(+) 전하를 띠고, 전자를 얻은 쪽은 마이너스(-) 전하를 띱니다. 두 쪽에 전위차가 생기면서 전기가 쌓인 곳에 물체가 닿으면 쌓였던 전기가 순식간에 불꽃을 튀기며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정전기입니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 스웨터를 벗으면 따갑거나, 다른 사람의 손을 스칠 때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정전기 때문입니다. 풍선을 머리에 문지른 뒤 떼면 머리카락이 정전기 때문에 풍선에 붙게 되는데, 마스크도 이런 원리로 미세먼지를 필터에 흡착시키게 됩니다.
한국식 방역의 일등 공신
우리가 마스크를 필수품으로 여긴 것은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미세먼지 때문이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보건용 마스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한국형 마스크 등급을 마련했습니다. 이 등급에 따르면 마스크는 내부 필터의 성능에 따라 KF80·KF94·KF99로 나뉩니다.
KF는 ‘입자 차단 성능(Korea Filter)’을 의미합니다. 각 등급의 숫자가 높을수록 차단율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KF80은 평균 입자크기 0.6㎛(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를 80% 이상 차단해주고, KF94와 KF99의 경우 평균 입자크기 0.4㎛를 94%, 99% 이상 차단한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식 방역의 대표 사례로 방역 마스크가 거론됩니다.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마스크 착용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미세먼지 파동이라는 ‘백신’ 때문 아니었을까요? 하루가 멀다고 밀려드는 답답한 미세먼지 속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썼던 마스크. 마스크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이제 전염병 파동을 눈앞에 두고 마스크로 다시 한 번 중무장했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느냐 하는 논의는 뒤로하고라도,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마스크 안 쓰고 마음껏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0.06.03
/ 2022.05.25 옮겨 적음
'[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기억 속의 장소 (0) | 2022.05.27 |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0) | 2022.05.27 |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9) 미 정부 인정한 UFO, 외계인이 보낸 걸까? (0) | 2022.05.25 |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8)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판도라 상자 열까? (0) | 2022.05.25 |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7) ‘하얀 황금’ 소금의 효능, 과신하지 말아야 (0) | 2022.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