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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8)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판도라 상자 열까?

푸레택 2022. 5. 25. 12:41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판도라 상자 열까?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8)] (daum.net)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판도라 상자 열까?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8)]

유전자를 연구자의 의도대로 편집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가 지난해 12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한 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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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유전자를 연구자의 의도대로 편집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가 지난해 12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한 뒤 자궁에 착상시켜 실제 출생까지 이르게 한 연구를 주도해 연구윤리를 위반한 혐의입니다. 연구결과 발표 1년여 만입니다.

유전자 편집 아기가 세상에 나오다


허젠쿠이의 연구 때문에 과학계는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SF영화에나 나오던 ‘맞춤형 아기’ 탄생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덜컥 열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맞춤형 아기는 키를 크게 하거나 똑똑하게 만드는 등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형질과 관련된 유전자만 골라 태어나게 하는 겁니다. 생명윤리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맞춤형 아기는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에게 금기시되는 연구였습니다. 허젠쿠이가 맞춤형 아기 탄생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히면서 제2, 제3의 맞춤형 아기 탄생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강력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제2차 인간유전체교정 국제회의’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의 탄생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아기 ‘룰루’와 ‘나나’가 태어나도록 하는 데 성공했으며, 세 번째 아이가 임신 중인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몸에 있는 단백질 CCR5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관여합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CCR5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제거했습니다. HIV 감염 경로를 차단해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해 실제 출생까지 이어진 것은 허젠쿠이의 연구가 처음입니다. 그간 정부의 허가 아래 소수의 연구자가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연구를 했지만 자궁 착상이나 출생까지 이어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유전자를 편집해 출생까지 이어질 경우 맞춤형 아기가 현실화되기 때문에 과학 윤리라는 이름으로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파란을 일으킨 것일까요? 이 기술은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DNA 가닥을 편집하는 데 쓰이는 기술입니다. DNA를 자르는 가위 역할을 하는 ‘절단효소’와 ‘크리스퍼 RNA’ 단백질을 붙인 형태입니다. DNA 염기서열 가운데 원하는 부분을 손쉽게 잘라낼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손쉽게 편집할 수 있어 2012년 학계에 보고된 뒤 급격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퍼는 유전자 가위 기술 가운데 3단계 수준입니다. 최초의 유전자 가위 기술은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1세대)이고, 이후 이를 보완한 2세대 탈렌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두 기술 모두 유전자를 잘라내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고 정확도도 낮았습니다. 사람의 유전자에 직접 사용하기엔 위험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3세대로 불리는 크리스퍼는 원하는 부분을 정확하면서도 빠르고 손쉽게, 게다가 저렴한 비용으로 잘라낼 수 있습니다. 정확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크리스퍼도 초기에는 동·식물의 유전자를 대상으로 이용됐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 곰팡이를 막기 위해 크리스퍼를 이용한 바나나 유전자 편집 기술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바나나는 유전적 다양성이 낮은데 현재 곰팡이균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해충으로 불리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서 크리스퍼가 활용되기도 합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불임 모기를 만들어 모기의 번식을 막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사람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로 연구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암 환자에게 크리스퍼로 편집된 면역세포를 주입한 결과 오랜 기간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다는 임상1상의 연구결과가 뉴스로 실렸습니다.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암 환자에게 임상을 시도한 것은 세계 최초이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암을 치료하는 데 효과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세포가 최대 9개월간 몸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는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면역항체를 만들어내 인체에 주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기 위한 첫 연구입니다.

‘미끄러진 경사면’ 현상 우려돼

크리스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기술이 가진 잠재적 위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2012년에 등장한 뒤 동·식물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편집한 사례가 급격히 증가해왔습니다. 언젠가는 인간의 유전자도 편집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함께 제기돼 왔습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 중국 중산대 황쥔주 교수 연구진이 크리스퍼를 이용해 인간배아의 유전자 편집을 시도하면서부터입니다. 연구진은 인간배아에서 빈혈 관련 유전자인 HBB를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단백질과 세포〉에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배아를 착상시키거나 출산으로 연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3년 뒤 허젠쿠이 교수의 유전자 편집 쌍둥이 출생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쉽습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그간 과학자들이 금기시했던 유전자 맞춤 아기의 탄생이라는 길을 텄습니다. 이 연구가 앞으로 제2 또는 제3의 맞춤 아기 탄생으로 이어지는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현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끄러운 경사면 현상은 어떤 원칙이 무너져 연관된 다른 원칙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영화 〈가타카〉는 맞춤 아기 출생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맞춤 아기입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 됩니다. 그는 맞춤 아기가 일상화된 사회를 마주하며 사람들의 기호대로 유전자가 편집돼 아이가 태어나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의 단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더 이상 영화 속에 머무르지 않고 곧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가 손에 넣은 강력한 기술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든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우리에게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맞춤 아기를 허용할 것입니까? 우리는 맞춤 아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인류가 그리는 올바른 미래의 모습일까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0.05.06

 

/ 2022.05.2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