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팬데믹이 불러일으킨 정보 팬데믹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15)] (daum.net)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로 퍼지자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팬데믹은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WHO가 발표하는 전염병 6등급의 경보 단계 가운데 최고 위험 등급입니다. 이탈리아 등 유럽을 비롯해 미국에서는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학교와 연구소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은 문을 닫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 증가세가 이제야 겨우 누그러진 한국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항공편 등으로 물류 및 인적 자원 교류가 활발한 탓입니다.
가짜뉴스가 안전 해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 시시각각 최신 뉴스를 찾아보곤 합니다. 보통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합니다. 3월 18일 ‘코로나19’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러자 검색 결과 가장 먼저 나온 단어가 ‘팩트체크’였습니다. 정보의 사실 및 허위성 여부를 가려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수많은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방역 마스크를 북한에 보내 마스크가 부족해졌다거나, 중국 유학생에게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도시락이 제공됐다는 내용, 항생제를 사두라던 서울대 의대 졸업생의 글, 4월 백신 개발 내용이 담긴 기획재정부와 제약업체의 미팅회의 요약본, 대구 확진자가 도로에서 차량을 가로막았다는 내용 등 수없이 많은 가짜뉴스가 인터넷에 유통됐습니다. 지금 언급한 뉴스는 모두 가짜로 판명됐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뉴스를 그대로 믿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소규모 그룹에 반복적으로 공유돼
왜 이렇게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가짜뉴스에 잘 속을까요? 가짜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2012년과 2016년 미국 대선이었습니다. 미국 정치가 민주당과 공화당, 양대 정당의 대결 양상이 심화하면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선호하는 뉴스만 편식하게 되는 현상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같은 사회 갈등을 비집고 가짜뉴스가 등장해 사회 문제가 됐습니다.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자 관련 연구도 활기를 띠었습니다. 가짜뉴스의 특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입니다. 대표적인 연구가 2018년 3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가짜뉴스의 특성을 분석했는데, 실제 가짜뉴스는 진짜뉴스보다 더 널리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 MIT 미디어랩 연구팀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폴리티팩트·팩트체크닷컴 등 팩트체크 기관 6곳에서 진짜 또는 가짜로 분류한 뉴스 12만6000건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연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연구팀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12만 6000건의 뉴스를 직접 인용하거나 공유한 이용자 300만 명의 트윗 450만 개를 수집했습니다. 이후 진짜뉴스와 가짜뉴스의 네트워크 내 전파 속도와 범위, 공유 횟수를 분석했습니다. 가짜뉴스가 공유된 횟수는 진짜뉴스가 공유된 횟수보다 70%가량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공유되는 패턴은 달랐습니다. 진짜뉴스는 하나의 뉴스가 10만 명 이상의 많은 사람에게 꾸준히 공유되는 특성을 보였습니다. 반면 가짜뉴스는 하나의 뉴스가 1000명 이하 적은 수의 이용자들에게 공유된 뒤 이중 소수의 이용자가 본인이 소속된 다른 그룹에 퍼뜨리는 방식으로 또다시 1000명 이하의 적은 수 이용자들에게 공유되길 반복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소수의 이용자에게 공유되지만 이 방식이 반복되면서 진짜뉴스의 공유 횟수를 넘어선 것입니다.
가짜뉴스는 공포나 역겨움, 놀라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진짜뉴스는 기대나 즐거움,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가짜뉴스는 보통 ‘충격’ 등 자극적인 단어를 제목에 넣을 때가 많습니다. 또한 사용자는 가짜뉴스를 진짜뉴스보다 더 새로운 정보로 인식했습니다. 사람은 보통 새로운 뉴스를 더 쉽게 공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가짜뉴스가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는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습니다.
팬데믹 공포 부풀리는 인포데믹
지난 3월 16일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40명 이상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습니다. 이 교회 신자들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이유는 목사의 부인이 교회를 찾은 신자들에게 일일이 입에 분무기로 소금물을 분사해 소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건당국은 분무기에 묻어 있던 바이러스가 다른 신자에게 옮아가면서 집단 감염 위험성을 높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금이 살균작용에 효과가 있긴 하지만 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터넷상에서는 소금물로 가글을 하면 목 내부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다는 가짜뉴스가 떠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마늘이나 김치, 레몬이 바이러스를 예방한다는 글이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지만 역시나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을 ‘인포데믹(infodemic)’이라고 합니다.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현상이 전염병과 유사하다는 데서 생겨났습니다. 소금의 살균작용 등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퍼져나가면서 결국은 집단감염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도 인포데믹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입니다. 코로나19 외에도 얼마 전 게르마늄 팔찌가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백신 부작용이 심해 백신을 맞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널리 퍼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 또한 대표적인 유사과학 사례로 인포데믹에 해당합니다.
인포데믹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허위 정보의 범람으로 감염병과 관련된 신뢰성 있는 정보를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코로나19의 경우 인류가 처음 접하는 전염병 유형이다 보니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 불확실한 요소가 상당히 많습니다.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대중의 불안감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인포데믹이 퍼져나갈 ‘자양분’이 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포데믹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보의 공개, 그리고 정보의 올바른 유통입니다. 가짜뉴스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 발달의 그늘에 해당합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가짜뉴스와 인포데믹에 속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뉴스 이용자 스스로가 정보가 가짜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한발 물러서서 정보의 진위를 가늠해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어려운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팬데믹의 현실 속에서 가짜뉴스에 속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올바른 정보와 그릇된 정보를 가리는 작업을 나부터 시작해봐야겠습니다.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0.03.25
/ 2022.05.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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