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박쥐는 왜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까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daum.net)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진자 수가 104명(2월 20일 기준)으로 급속히 늘어나면서 사태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2월 20일 하루에만 대구·경북지역에서 51명, 서울지역에서 2명으로 총 53명이 무더기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존 확진자들은 해외여행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확진자들은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을 접촉한 2차 접촉자이거나, 아예 해외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염자들이 다양해지면서 코로나19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토록 긴장시키고 불편하게 만드는 코로나19는 어디서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요? 어디서 이렇게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감염의 공포에 떨게 하는 걸까요? 과학자들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그 기원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지목받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박쥐’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박쥐는 약 200종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악명 높은 전염병 가운데 많은 수가 박쥐 몸속의 바이러스가 전파되면서 발생했습니다.
돌연변이 일으켜 인간 위협하는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솔즈베리에 있는 감기연구소가 환자들의 비강 분비물을 채취해 감기를 유발하는 원인 바이러스를 규명했는데, 이 과정에서 흔히 감기바이러스라 불리는 리노바이러스가 아닌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됐습니다. 이때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두 종류로, 당시만 해도 인간에게 감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이게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보통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전염성은 높지만 병원성은 낮았습니다. 대부분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게 더 흔히 감염되는 바이러스였습니다. 개의 경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장염 증상을 보입니다. 고양이는 복막염을 일으킵니다. 돼지나 닭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신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스·메르스·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변해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2002~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호흡기질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인간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는 동물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까지 감염시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를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합니다.
바이러스의 서식지 박쥐
동물에게서 인간에게 옮겨오는 인수공통감염병 원인균의 첫 서식지로는 ‘박쥐’가 유력합니다. 박쥐를 먹거나 박쥐를 포획해 시장에 내다 파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직접 바이러스가 옮길 수도 있고, 박쥐의 바이러스가 다른 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스와 메르스는 모두 후자에 속했습니다. 사스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로 옮겨진 뒤 다시 사람에게 전파됐습니다. 사향고양이는 값비싼 커피인 시벳 커피(또는 루왁 커피)를 만드는 동물로 유명합니다. 메르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거쳐 사람까지 전염됐습니다.
이외에도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가 기원이 된 전염병은 다양합니다. 1994년 호주에서는 서러브레드 경주마와 조련사를 죽인 신종 전염병이 창궐했는데, 박쥐의 헨드라바이러스가 원인이었습니다. 호주에서는 2년 뒤 사람에 출현한 광견병과 유사한 전염병이 발견됐는데, 박쥐의 라사바이러스가 원인이었습니다.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100여 명을 사망하게 한 니파바이러스도 모두 박쥐에서 유래한 바이러스였습니다.
박쥐가 전염병을 옮기는 숙주로 크게 관심을 받은 것은 2003년 사스 파동 때였습니다. 중국과학원 리웬동 박사는 2004년 중국 남부지역에 서식하는 박쥐를 포획해 조사한 결과 관박쥐에서 사스와 매우 유사한 바이러스를 발견했습니다. 관박쥐 가운데 일부는 사스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도 갖고 있었습니다. 리 박사의 연구로 사스바이러스의 숙주가 중국 남부지역에 서식하는 관박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진화 통해 면역 반응 낮춘 박쥐
박쥐는 지난 1억 년 동안 극지방을 뺀 세계 곳곳에 퍼져 1200종으로 진화했습니다. 포유류의 약 20%를 차지할 만큼 종이 다양합니다. 몸집은 작지만 수명이 길어 바이러스가 오래 머무르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무리를 이뤄 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다른 박쥐로 옮아가기도 쉽습니다. 특정 종은 한 곳에 100만 마리 이상이 모여 서식하는데 밀도로 보면 1㎡당 300마리가 사는 셈입니다. 날 수 있어 사람이 사는 건물 구석구석까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바이러스를 퍼뜨리기에 용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는 어느 정도일까요? 2013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콜린 웹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보면 박쥐는 보통 바이러스를 잘 옮긴다고 알려진 쥐 같은 설치류보다 더 많은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서식하는 박쥐도 예외가 아닙니다. 2016년 생명공학연구원이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 박쥐의 분변에서 바이러스를 분석했더니 코로나바이러스와 로타바이러스가 발견됐습니다.
박쥐는 면역체계가 독특해 200여 종의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어도 바이러스 감염 증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몸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체계를 가동해 균을 죽이려고 드는데, 박쥐는 강한 면역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쥐는 5000만 년 이상을 살아오며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쥐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살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지만, 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공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무엇이 박쥐의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감염시킨 것일까요? 박쥐는 동굴에 살면서 바나나·아보카도·망고 등의 꽃가루받이를 하고 다양한 열대식물의 씨앗을 퍼뜨리는 등 생태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박쥐는 인간의 환경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사람이 사는 생활터전으로 서식지를 옮겼습니다. 식용 목적으로 야생 박쥐를 포획해 재래시장에 이를 내다 파는 일이 아직도 벌어집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박쥐의 탓 같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의 시작은 인간입니다.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0.02.26
/ 2022.05.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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