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검증되지 않은 약 복용의 위험성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daum.net)
개에 사용하는 구충제 ‘펜벤다졸’이 사람의 암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암환자들 사이에 펜벤다졸 복용 ‘붐’이 일고 있습니다. 펜벤다졸은 개나 고양이의 회충 등 체내 기생충을 잡는 데 쓰이는 동물용 구충제 성분입니다. 값이 싸고 안전성이 높아 40여 년 간 사용돼 왔습니다. 이 약은 기생충의 피부와 장 세포에 있는 미세소관의 단백질 형성 과정을 억제합니다. 기생충은 펜벤다졸에 노출되면 단백질 생성 과정이 멈춰 세포 기능이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이 약해져 굶어 죽게 됩니다.
보건 당국과 전문가들은 암치료를 위해 펜벤다졸을 복용할 경우 간독성이 상승해 오히려 항암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경고했음에도 펜벤다졸 복용 붐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펜벤다졸은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폐암 말기 환자인 미국인 조 티펜스가 펜벤다졸을 복용한 뒤 암이 완치됐다는 소식이 한 유튜브 채널에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암환자들이 직접 펜벤다졸을 복용하며 소셜미디어(SNS)에 후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폐암 말기 투병 중인 개그맨 겸 가수 김철민씨도 직접 펜벤다졸을 복용하며 SNS를 통해 경과를 알리고 있습니다.
말기 암환자의 동영상 후기로 시작
유튜브와 다양한 SNS에서 펜벤다졸의 항암효과에 대한 콘텐츠가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약국에서 펜벤다졸 구입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이 약품이 거래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말기 암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물용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검색하다가 어느 댓글에서 “암으로 죽으나 구충제 복용 부작용으로 죽으나 매한가지인데 이왕이면 마지막 노력이라도 해보겠다”고 적은 구절을 읽을 때는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습니다.
펜벤다졸 효능 논란을 계기로 구충제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건강 정보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처음 이 이슈를 들었을 때 구충제가 항암효과를 나타낸다니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판벤다졸의 항암효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도 연구진의 논문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 논문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됐습니다. 이 학술지는 국제 저명 학술지 〈네이처〉를 발행하는 네이처 그룹이 발행하는 학술지지만 무료로 공개되는 온라인 학술지입니다. 영향력과 신뢰도를 나타내는 IF(임팩트팩터) 지수도 네이처보다 훨씬 낮습니다.
인도 연구진은 논문에서 펜벤다졸이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메커니즘을 제시했습니다. 연구진은 암세포에 펜벤다졸 약물을 투입해 그 결과를 살펴봤더니 암세포가 사멸되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연구진은 펜벤다졸 성분이 동물의 체내 기생충이 세포분열을 할 때 나타나는 미세소관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기생충을 죽이는데, 이 과정이 암세포의 사멸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암세포는 체내에서 과도하게 증식하는 세포 덩어리입니다. 세포분열이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분열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소관 구조인 ‘방추사’를 억제해 세포분열을 억제할 수 있다고 제시한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기능의 항암제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항암제는 크게 세포독성 항암제, 표적 항암제, 면역 항암제 3종류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세포독성 항암제가 구충제의 항암효과 원리와 비슷합니다. 이 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하는 약물이 아닙니다. 암세포를 포함해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에 모두 작용을 합니다. 이 때문에 암세포뿐 아니라 체내 다른 세포에도 독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항암치료 중 탈모 부작용이 나타난 것은 이처럼 세포독성 항암제 때문에 체내에서 분열이 활발한 모낭세포가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구충제의 항암효과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다수 출판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니타족사나이드(NTZ)라는 구충제의 경우 대장암과 전립선암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최근 〈네이처 화학생물학〉지에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NTZ는 1974년 파스퇴르연구소의 화학자 장 프랑수아 로시뇰이 개발한 구충제입니다. 장에 서식하는 촌충과 회충 같은 기생충 등을 없앨 수 있는 약으로 현재도 사용되는 구충제 약물입니다. 구충제가 암치료에 실제 쓰인 사례도 있습니다. 레바미솔이라는 구충제는 30여 년 전 대장암에 항암제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심했다고 합니다. 더 효과가 좋은 항암제들이 개발되면서 현재는 항암제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논문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항암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출판되었다고 해서 모두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펜벤다졸의 경우 암세포에 약물을 직접 떨어뜨려 그 효과를 본 논문이 출판된 것으로 체내에서 다양한 조건 및 환경에서 약물이 어떤 작용 및 부작용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위 논문에서 실시한 실험이 너무 기초적인 연구인 것입니다. 심지어 어느 정도의 양을 인체에 투입해야 항암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약물이 실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해도 기존 약물보다 효능이 뛰어나지 않거나, 부작용이 클 땐 신약 개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후에 개발된 타 약물에 비해 효용이 떨어질 경우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합니다. 구충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항암 약물로 관심을 받았지만 신약 개발로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충제 펜벤다졸을 사람이 복용할 경우 인체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이 구충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약물 개발 및 복용 과정에 있어서 이러한 불확실성은 최대한 피해야 할 요소입니다. 말기 암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물의 구충제라도 복용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현시점에서 구충제를 암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유할 전문가는 없어 보입니다.
실제 최근 미디어 신뢰도 조사를 보면 기존 언론 매체보다 유튜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매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발표된 〈시사 in〉 신뢰도 조사에서 유튜브가 신뢰하는 언론 매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대폭 상승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설문조사는 이번 펜벤다졸 사태에서도 똑같이 드러납니다. 환자 자신이 직접 임상시험 대상이 되어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전문가의 말보다 더 신뢰하게 되는 현상 말입니다. SNS는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해 볼 수 있는 편향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을 꼭 알고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세계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되돌아볼 때입니다.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0.01.22
/ 2022.05.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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