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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뇌과학 연구에서 정책까지

푸레택 2022. 5. 23. 20:14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뇌과학 연구에서 정책까지 (daum.net)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뇌과학 연구에서 정책까지

[경향신문] 세상의 모든 사물은 물리법칙에 따른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옳다고 생각하든 그르다고 생각하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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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물은 물리법칙에 따른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옳다고 생각하든 그르다고 생각하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밤 늦게 라면을 먹으면 살이 찌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줄어든다.

사회성이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법칙처럼 작용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동시대 호모 사피엔스들의 생각이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라면 머리카락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믿던 시절에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다. 반면에 요즘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 사람을 신기하게 여긴다. 머리를 자르는 행동에 뒤따르는 결과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는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자연의 법칙과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때 생긴다. 많은 사람이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믿을 때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최적화할 것이라고 믿을 때는 독과점에 대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유, 평등, 박애 등 무엇에 가치를 부여할지는 동시대 사람들의 합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지만, 자연에 대한 생각은 정확한 이해에 근거해야 한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도움으로써 제도와 정책에 영향을 준다. 과학 연구의 과정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무엇에 연구비를 투자할지, 특정 연구 성과를 얼마나 홍보하고 어떻게 사용할지는 정치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활동으로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많았지만, 이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져 현실의 제도를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 뇌과학 연구자와 정책가의 협업

뇌과학은 인간의 마음과 긴밀하게 연관된 기관인 신경계를 연구하는 분야이므로 정책에 영향을 줄 여지가 많다. 그런데 과학이 정책에 활용되려면 논문을 내고 학회에서 발표하는 전통적인 학술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논문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분야가 다르면 전문 용어는 물론 사고의 스타일과 고려 대상도 다르기 때문에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요 저널은 영어권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독자들은 언어장벽 탓에 논문을 읽을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어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래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저술한 고려대 김승섭 교수는 한국 성소수자에 대한 논문을 영어로 출간한 뒤, 한국어로 번역하는 노고를 더해서 한국어 논문을 하나 더 작성했다.

이미 많은 정보를 접하는 정책가들에게는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뢰할 수 있고 주제에 걸맞은, 잘 요약된 자료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정책가들 사이에 이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면 이 과정이 수월해진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약물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수십년째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마약으로 수감된 사람의 숫자가 유럽 전체 재소자 숫자보다 많은 등 대응이 효과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약물중독과 관련된 연구를 해온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 7명과 정책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 9명이 ‘중독과 정책에 대한 스탠퍼드 네트워크’(Stanford Network on Addiction and Policy, 이하 SNAP)를 구축했다.

우선 정책 분야의 구성원들이 마리화나 규제, 유년층의 마약 사용 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 4가지를 투표로 선별했다. SNAP는 5년 동안 이 주제에 집중했다. 주로 온라인으로 교류했으며 전체 회의는 2년에 한 번씩 가졌다. SNAP는 자문을 하거나, 대중들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정책가들이 읽기 쉬운 한두 쪽짜리 자료를 만드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정책가들은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과학자들은 대중 정책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책가들에게 효과적으로 편지를 쓰고 브리핑을 하는 방식,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정책과 관련된 과학 정보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개선되었다.

이 네트워크가 성공적으로 운영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SNAP는 구성원들이 잘 모르는 추가 정보가 필요할 때는 구성원들의 지인들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해갔다. 불필요한 의혹을 피하기 위해 제약회사의 연구비 지원은 피하고,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SNAP의 핵심 멤버를 구성했다. 동질적이지 않고 다양한 네트워크는 무의식적인 편견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을 주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책가들은 지위를 앞세우거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아탑의 이야기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연구자들도 가르치려 들거나,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책의 특성과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한 채 과학적 성과만 강조하지는 않았다.

◇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과학

과학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면 잊기 쉽지만, 서양의 과학은 서양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달력을 개선하려는 과정에서 천문학이 발전했고, 전보와 철도가 발전하면서 시차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상대성이론이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 청소년 등교시간, 기후변화와 에너지, 빅데이터와 개인정보 등 많은 부문에서 과학 지식이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변화에는 이해관계의 대립과 가치 충돌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과학의 발전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대립과 충돌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현숙함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19.10.23

/ 2022.05.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