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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신경마케팅

푸레택 2022. 5. 23. 20:04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신경마케팅 (daum.net)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신경마케팅

[경향신문]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은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하지만 가치와 제도처럼 인간 사회에서만 중요한 것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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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은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하지만 가치와 제도처럼 인간 사회에서만 중요한 것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생각에 따라 변해간다. 정치와 경제의 영역이 특히 그렇다. 사람들은 더 많은 타인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움직여주기를 바라며 분투해왔다. 휴대폰으로 이 칼럼을 읽는 분들에게 보일 광고들이 그런 분투의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다수의 콘텐츠와 서비스가 광고료에 의존할 정도로 마케팅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투자된다. 당연히 기업들의 고심이 깊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을까? 구매는 현대사회의 핵심적 활동인 만큼 뇌과학자와 경제학자들도 궁금해했다. 구매라는 결정을 내릴 때 뇌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신경마케팅

신경마케팅이란 고객들의 행동, 선호, 의사결정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뇌과학이나 생리학 연구에 쓰이는 기술들을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마케팅의 효과를 높이려고 연구를 할 때는 설문조사나 실험, 초점집단 면접 등이 활용됐다. 반면 신경마케팅에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뇌파 검사(EEG), 피나 침 속의 호르몬 농도 측정, 안구 추적, 심장 박동 측정, 피부의 땀 분비량 측정 등이 활용된다.

연구를 위해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비용과 얻을 수 있는 정보, 가능한 실험의 종류가 달라진다. fMRI 실험에는 수백만원이 필요하고, 참가자가 MRI 스캐너 안에서 누운 상태로만 실험을 할 수 있다. EEG는 비용이 더 적게 들고, 참가자가 다양한 공간에서 실험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위치에서 뇌 반응이 일어났는지 알기가 어렵다. 호르몬 측정, 안구 추적 등에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최신 기술을 사용했다고 무조건 더 좋은 것은 아니고, 기술을 제대로 사용해서 정확하게 분석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fMRI 연구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3년 뒤에 이 음악의 지난 3년간 누적 판매량과 청소년들의 뇌 활동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신경마케팅 연구는 물건의 가격을 책정할 때도 힌트를 줄 수 있다. 한 연구에서는 와인의 가격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으면 같은 와인을 마시더라도 뇌 활동이 달라지는 것을 관측했다. 이는 와인을 마시는 경험의 즐거움이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부풀려진 희망과 공포

신경마케팅을 뇌과학의 악용 사례로 간주할 정도로 신경마케팅을 경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경마케팅이 나의 생각을 읽어내거나, 나의 구매 행동을 나도 모르게 조작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염려가 컸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신경마케팅 연구와, 구매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적 연구를 구별하기 위해서 후자를 ‘구매자 뇌과학’이라는 별도의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염려는 현실성이 없거나 ‘신경’마케팅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선 신경마케팅은 ‘나’의 생각을 나도 모르게 읽을 수 없다. 내가 신경마케팅 연구에 참여해서 나의 뇌 활동이나 나의 생리 활동을 측정했을 때 해당 실험과 관련된 제한된 정보만을 기업이나 연구자들에게 주게 되며,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신경마케팅이 아니어도 본의 아니게 나의 정보를 기업에 넘기는 일은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고, 기업들은 이렇게 모은 빅데이터를 마케팅에 활용하곤 한다. 앞서 fMRI로 음악 판매량을 예측한 연구를 언급했는데, 음악이 히트할 확률은 이미 빅데이터로도 예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라는 회사는 2013년 그래미상을 수상할 음악을 예측했고, 6곡 중 4곡에 대한 예측이 적중했다. 스포티파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추천하는 일도 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것처럼 뇌를 측정한다 해서 구매 행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고, 잘 짜인 마케팅으로 뇌 속의 구매 버튼을 누를 수도 없다. 뇌 속에는 그런 버튼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옆구리를 찌르는 정도(Nudge)는 할 수 있겠다. 미국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더 열심히 연금보험에 불입하게 하기 위해 연금보험 선택지의 기본값을 조정하는 것(사람들은 대개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다음’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옆구리를 찔린 경우라도, 우리는 언제나 ‘내가 정말로 이것을 원하는지’ 멈춰 서서 따져보고 결정을 바꿀 수 있다.

지식은 한두 명의 천재가 아닌, 여러 사람의 동시다발적 발견으로 진보한다. 이렇게 옆구리를 찌르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여러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발전해갈 것이고, 그렇다면 아예 연구 자체를 막는 것보다는 온건하게 쓰일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두루 아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새로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확산시키고 활용할지는 별개 문제가 되겠지만.

◇ 협력하고 싶은 이웃

정보를 어떻게 확산시키고 대응할지는 국적도 피부색도 가리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에서도 중요하다. 이처럼 힘든 일을 겪으며, 우리는 좋든 싫든 지구촌 공동체임을 통감한다. 기후위기가 심해지고, 신종 전염병의 출현이 잦아지며 앞으로도 이처럼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해야 할 일이 늘어갈 것이다. ‘협력’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이 아름다운 말의 실천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힘들 때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도와주면서도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힘들 때뿐만 아니라 좋을 때도, 서로가 서로에게 함께하고 싶은 이웃이기를 바란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20.02.12

/ 2022.05.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