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순환하는 혈액 속의 신호 (daum.net)
개체분절적으로 사고한다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발전된 과학에 개체분절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과학에 익숙한 현대인들도 개체분절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의 한 예가 뇌와 관련된 증상의 원인을 뇌에서만 찾는 것이다. 뇌는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노폐물을 처리하며, 외부 환경과 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신체의 나머지 부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뇌의 노화에서도 신체 다른 부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노년의 피 vs 젊은 피
19세기에 젊은 개체와 나이 든 개체 사이에 피를 교환하는, 약간은 잔인한 수술 기법이 도입되었다. 혈액 속에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있어서 뇌를 비롯한 신체 장기들이 몸 전체로 신호를 전달하고 정보를 통합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나이에 따른 피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젊은 개체의 피를 나이 든 개체에 주입하면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이 촉진되고, 시냅스를 구성하는 핵심적 구조물인 스파인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마는 사건과 지식을 기억하고 공간을 탐색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부위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을 때 두드러지게 손상되는 대표적인 부위다. 반대로 나이 든 개체의 피를 젊은 개체에 주입했더니 해마에서의 신경세포 생성이 줄어들고, 학습과 기억 능력이 저하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나이에 따라 혈액을 순환하는 단백질의 양과 종류가 변하기 때문이다. 혈액에 있는 3000여개의 단백질을 조사한 르할리에(Lehalli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노화와 관련된 단백질들은 만 34세까지 늘어났다가 한동안 줄어든 뒤, 만 60세 전후로 다시 조금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만 78세까지 크게 높아졌다. 청년, 중년, 노년기에 혈관을 순환하는 단백질의 종류는 많이 겹쳤으나, 완전히 겹치지는 않았고 발현되는 양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어떤 장기에서 어떤 원리로 어떤 단백질들이 생기는지, 이 단백질들이 뇌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조금 살펴보자.
◇ 운동하는 근육이 보내는 신호
근육은 운동을 하는 동안, 여러 종류의 단백질과 대사 부산물을 내보낸다. 이렇게 분비된 물질들 중에는 가까운 거리를 잠시 이동하는 것도 있지만, 혈액을 따라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운동한 다음날 근육통을 일으키는 젖산(락트산)이다. 락트산은 해마를 비롯한 뇌의 각 부위에서 혈관의 형성을 촉진하여 에너지와 물질의 공급을 돕는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과 신체 활동량이 줄어드는데, 이런 변화는 인지 능력의 감퇴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운동 후에는 FNDC5라는 단백질이 쪼개지면서 해마의 성장인자를 조절하는 물질이 생긴다.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해마와 뇌척수액에는 FNDC5의 양이 적다고 한다. 반면 알츠하이머병의 모델 생쥐에서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약물을 주입하여 FNDC5의 양을 늘리면 인지 능력이 향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상의 연구들은 운동이 건강한 뇌 활동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식습관과 수면
뇌가 원활하게 동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공급이 매우 중요하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밖에 되지 않지만, 몸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0%나 소비한다. 뇌는 글루코스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글루코스가 부족할 때는 케톤체도 사용한다. 케톤체는 단식(예: 저녁 식사 후 다음날 아침 식사까지 12시간 동안의 단식) 기간 동안 간에서 생성된다. 케톤체는 오랫동안 굶은 후나,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인슐린 저항성을 가진 경우에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무지카-파로디(Mujica-Parodi) 등의 연구에 따르면, 밤 동안 단식을 한 사람이나 케톤 이스터(체내 케톤체 농도를 높여주는 물질)를 섭취한 사람들의 뇌에서는 서로 다른 뇌 부위들 간의 소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통상적인 식사를 하고 케톤 이스터를 섭취한 사람들의 뇌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관찰되었다. 서로 다른 뇌 부위들 간의 안정적인 소통은 뇌의 노화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야식하지 않는 식습관도 뇌의 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노폐물 제거도 중요하다. 노폐물을 담고 있는 뇌 구석구석의 액체(간질액)는 뇌동맥의 맥박에 힘입어 뇌척수액으로 들어가고, 뇌척수액을 통해 노폐물이 뇌 밖으로 나간다. 나이가 들면 맥박의 힘이 약해지면서 간질액이 뇌척수액으로 들어가는 효율이 떨어진다. 뇌척수액을 통해 노폐물이 청소되는 과정은 잠을 잘 때 활발하다. 그래서 간헐적인 수면 부족과 불규칙적인 수면은 인지 능력의 저하를 부추기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 생활습관과 뇌의 노화
이상의 연구들은, 뇌의 노화라는 게 뇌만 늙는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뇌의 노화는 몸 전체의 노화와 얽힌 현상이며 평소 먹고 자고 운동하는 생활습관과 긴밀히 상호작용한다. 노파심에 보태자면, 이 글을 읽고 케톤 이스터를 먹거나, FNDC5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다소 이를지도 모르겠다. 완경기 후에 약으로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이는 것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는 것처럼 위 물질들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액 속의 모든 단백질을 정교하게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고, 임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져서 수십년 안에는 좋은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20.04.08
/ 2022.05.2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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