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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노래를 듣는 뇌

푸레택 2022. 5. 23. 20:00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노래를 듣는 뇌 (daum.net)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노래를 듣는 뇌

[경향신문] 영화 <킹스 스피치>에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던 조지 6세가 연설문을 읽거나 대화를 할 때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노래를 부를 때는 가사를 더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재미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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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스 스피치》에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던 조지 6세가 연설문을 읽거나 대화를 할 때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노래를 부를 때는 가사를 더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는 말과 미묘하게 다르다. 둘 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노래에는 가사만큼이나 가락이 중요하다. 가사는 별로지만 가락이 좋아서 자주 듣는 노래들이 있다. 반면에 말에서는 가락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 중국어처럼 성조가 중요한 언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표준어에서는 높낮이가 없는 인공지능 스피커의 어색한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가락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음치여도 가사는 알아듣는 경우를 보면 노랫말과 가락의 인식은 다르다. 뇌는 말과 가락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할까?

◇ 노랫말과 가락

말이나 가사를 인식할 때는 짧은 시간 동안 들리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문’과 ‘지문’은 첫 글자 하나만 다르다. ‘신문’을 ‘지문’과 구별해 들으려면 ‘신’이라고 발음하는 짧은 시간 동안의 소리를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간 흐름과 관련된 소리 정보를 시계열 정보라고 부르기로 하자. 반면 가락을 인식할 때는 음의 고저와 박자가 더 중요하다. 노래 잘 못하는 사람을 왜 음치 또는 박치라고 하겠나. 음의 고저와 장단, 박자 등은 소리의 주파수와 관련이 깊으므로 이걸 주파수 정보라 부르기로 하자. 노래는 가사와 가락을 담고 있으므로, 노래를 들으려면 시계열 정보와 주파수 정보 둘 다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소리에서 시계열 정보와 주파수 정보를 동시에 뽑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뇌가 어떻게 이 문제를 계산적으로 해결할지를 두고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논쟁과 관련해서 알부이(Albouy) 등 학자들이 지난달에 논문을 출간했다. 저자들은 10개의 새로운 문장과 10개의 새로운 가락을 만든 뒤, 이 둘을 조합해서 100개의 자연스러운 아카펠라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노래에서 시계열 정보를 조금씩 다른 정도로 손상시킨 샘플 두 개를 만들어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두 노래의 가사가 같은지 다른지(혹은 두 노래의 가락이 같은지 다른지)를 판단하게 했다. 주파수 정보에 대해서도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예상했던 대로 가사를 들을 때는 시계열 정보가 더 중요하고, 가락을 알아들을 때는 주파수 정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연구자들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해서 소리에서 시계열 정보가 손상되거나, 주파수 정보가 손상되어감에 따라 뇌 활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보았다. 특히 좌뇌와 우뇌의 차이에 주목했다. 언어의 사용은 우뇌보다 좌뇌에 더 의존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좌뇌에서 소리 인식과 관련된 부위의 활동량과, 우뇌에서 같은 부위의 활동량을 단순하게 비교했을 때는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계 학습을 사용해서 뇌의 활동 양상이 시계열 정보의 손상 정도(혹은 주파수 정보의 손상 정도)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살펴봤더니 유의미한 차이가 드러났다. 좌뇌 청각 부분의 활동 양상은 시계열 정보의 손상과 더 긴밀한 관계가 있는 반면, 우뇌 청각 부분의 활동 양상은 주파수 정보의 손상과 더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또한 가사의 인식은 좌뇌와, 가락의 인식은 우뇌와 더 깊은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조심할 점은, 이 연구가 ‘좌뇌는 이성과 언어를, 우뇌는 음악과 감성을 관장한다’거나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좌뇌형과 우뇌형으로 양분할 수 있다’는 가짜과학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사를 구별할 때라고 우뇌가 꺼져 있거나, 가락을 들을 때라고 좌뇌가 꺼져 있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일상 언어에서도 운율이 중요하듯이 말에서도 가락이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한다. 좌뇌가 노랫말의 인식에, 우뇌가 가락의 인식에 더 중요하긴 하지만 무 자르듯 나누기는 어렵다고 보면 되겠다.


◇ 힘들 때도 평화로울 때도

지난 한두 달은 노래를 흥얼거리기 힘든 시간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온 나라가 멈춘 듯하면서도 부산했다. 저마다 바깥활동을 줄이고 집 안에 머물며 때로는 불안해하고, 때로는 분통을 터트리고, 때로는 차분하게 배려하며, 어찌 됐든 우리는 이 충격을 견뎌내고 있다. 마트에서 식료품 사재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손 소독제의 도난도 처음에 잠깐 있었을 뿐 드물었다. 코로나19 진단검사가 빠른 시간에 낮은 가격으로 수 만명의 국민들에게 제공되었고, 상황은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웅크린 몸을 일으키느라 잠시 흔들린 후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물론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고, 감염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나라들이 있기 때문에 국내 상황이 진정되더라도 한동안은 신경을 쓰는 게 좋다. 더욱이 코로나19가 우리가 맞이할 마지막 전염병도 아닐 것이다. 새로운 전염병은 계속 등장할 것이고, 기후위기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도 아마 잦아질 것이다. 호주 산불이 호주산 쇠고기와 양모, 철광석 수입에 영향을 준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가면서도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는 역량, 안정기에 조속하게 회복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번 상황에 맞서서 재택근무, 화상강연 등의 대책을 생각해내고, 코로나19 진단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켰으며, 곧 다시 회복하는 것처럼. 힘들 때도 평화로울 때도, 삶 속에 노래처럼 생명력이 깃들길.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20.03.11

/ 2022.05.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