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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생쥐에게도 표정이 있다

푸레택 2022. 5. 23. 19:52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생쥐에게도 표정이 있다 (daum.net)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생쥐에게도 표정이 있다

[경향신문] 오래전에 쥐 실험을 할 때였다. 배고픈 쥐에게 먹이를 25%, 50%, 75%, 100% 중 하나의 확률로 주면서 확률적인 보상의 학습에서 도파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보상이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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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쥐 실험을 할 때였다. 배고픈 쥐에게 먹이를 25%, 50%, 75%, 100% 중 하나의 확률로 주면서 확률적인 보상의 학습에서 도파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보상이 100%로 주어질 때면 쥐는 다소 느긋하게 먹이를 즐기곤 했다. 특히 쥐가 고개를 살짝 들고 오물오물 씹는 모습을 보노라면, 쥐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쥐에게 표정이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쥐의 표정을 측정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과학에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주장하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또 표정은 사회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쥐의 사회성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쥐가 다른 쥐의 행동을 보고 학습할 수 있다거나, 낯선 쥐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려 애쓴다는 등의 연구 결과는 최근에 축적되었다.

지금은 쥐의 표정을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사진 속의 물체를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인식할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에는 쥐의 표정을 비롯한 온갖 움직임을 예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과학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지난달에는 생쥐의 감정이 어떻게 표정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돌린직(Dolensek) 등의 연구도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은 생쥐가 감정적인 사건들을 경험하는 동안, 생쥐의 얼굴을 촬영하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했다.

◇ 감정을 담은 표정

연구자들은 생쥐의 머리가 고정된 상태에서 꼬리에 전기 쇼크를 주거나, 달콤한 설탕물을 주거나, 쓴 액체를 주거나, 진정제 계열의 약물을 투여해 아프고 무기력한 느낌을 주었다. 또 쥐가 떨거나 도망치려 하는 시점도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생쥐의 표정을 분석한 결과, 생쥐의 표정이 사건별로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생쥐의 표정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후, 생쥐의 표정만으로 어떤 감정 사건을 겪고 있을지 알아맞히게 했더니 90% 이상 정확도가 나왔다. 이 결과는 감정 사건과 표정 사이에 일대일에 가까운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위 결과만으로는 생쥐의 표정이 생쥐의 감정을 드러낸다고 보기 어렵다. 생쥐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무릎 반사처럼 단순한 반사에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생쥐의 표정이 감정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반영하는지 실험해 보았다. 먼저 감정에는 강도가 있다. 연구자들은 설탕물이 달콤할수록 생쥐의 표정이 단맛을 느낄 때의 전형적인 표정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쓴 용액과 전기 쇼크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는 감정처럼 표정에도 강도가 있음을 암시한다.

또 감정에는 좋고 싫음이 있다. 염분은 신체에 적절히 필요하므로 설치류는 약한 농도의 염분은 좋아하지만 고농도의 염분은 싫어한다. 연구자들은 소금물이 연할 때는 생쥐의 표정이 단맛을 느낄 때의 즐거운 표정에 가까운 반면, 소금물의 농도가 진할 때는 쓴맛을 느낄 때의 역겨운 표정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표정이 대상(이 경우 소금)의 특징 때문이 아니라 좋고 싫음에 따라 일반화됨을 뜻한다.

감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신체 상태를 비롯한 내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감정은 생존을 위해 행동, 호르몬, 자율신경 등이 반응하는 패턴으로서, 외부 정보와 신체의 신호, 인지 처리가 역동적으로 통합되어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생쥐가 목이 마른 상황과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물을 마실 때의 표정을 비교한 결과, 목마른 상황에서 물을 마실 때 즐거운 표정에 더 가까웠다.

또 감정적인 반응은 경험에 따라 변한다. 먹고 체했던 음식이 싫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설탕물을 마신 생쥐에게 일시적으로 몸을 아프게 하는 약물을 주입하면 생쥐도 설탕물을 싫어하게 되는데, 이런 감정적인 변화가 표정에서도 확인되었다. 약물을 주입하기 전에는 설탕물을 마실 때 즐거운 표정을 짓던 생쥐가, 약물을 주입한 후에는 설탕물을 마시고 역겨운 표정을 보였다.

끝으로 감정은 감정을 유발한 사건이 끝난 뒤에도 지속될 수 있는데, 연구자들은 생쥐의 표정이 감정적 사건이 지난 뒤에도 지속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감정 사건은 대개 2초간 제시되었음에도, 표정은 15초 이상 지속되는 사례가 17%에 달했다. 이상의 결과들은 생쥐의 표정이 감정의 핵심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감정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섬엽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즐겁거나 역겨운 표정과 관련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 타인의 감정

생쥐의 표정이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처럼 많은 실험이 필요한 이유는, 행동과 표정은 객관적으로 관측할 수 있지만, 감정은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주관성은 아직 과학조차 모르는 영역이다. 간혹 다른 사람의 생각(깊이 반성한다거나, 싫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좋아한다거나)을 자기가 안다고 단정하는 경우를 본다. 단정을 했더라도 이후에 관측된 사실이 단정과 다르다면 단정을 멈춰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 경우들을 본다. 하물며 생쥐의 표정을 추정하는 것조차 저토록 조심스러웠는데, 타인의 감정을 확언할 수 없음을 배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20.05.06

/ 2022.05.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