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저탄고지 식단 정말 몸에 괜찮을까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과학] (daum.net)
남편이 한 달 전부터 버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식사 대신 버터 한 덩어리를 넣은 커피, 일명 ‘방탄커피’를 마신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구울 땐 마지막에 버터로 코팅을 해서 먹었습니다. 달걀프라이를 할 때도 버터를 녹여 사용했습니다. 보통은 몇 달을 써도 다 못 먹는 버터가 한 달도 안 돼 동이 났습니다. 버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올리브오일과 코코넛오일도 사서 먹어보자고 했습니다. 대신 밥·빵·국수 등 탄수화물 식품을 멀리했습니다.
남편은 ‘저탄고지’, 즉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을 늘리는 식단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저탄고지 식단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방탄커피를 마시면 오전 내내 배가 고프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식단계의 ‘모범생’이자 전직 과학기자인 저는 진심으로 남편의 지방 과식이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탄수화물의 양을 일일 섭취량의 10% 이내로 제한하고 대신 지방의 섭취를 70% 이상으로 늘리는 저탄고지 식단은 정말 살을 빼주나요? 아니 정말 건강에 괜찮은 걸까요?
# 저탄고지 식단이란
탄수화물 섭취를 극히 제한해 ‘케토시스(ketosis)’를 유도하는 원리입니다. 케토시스란 탄수화물이 분해돼 생기는 포도당 대신 지방산 대사의 부산물인 케톤체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대사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몸은 에너지가 필요할 때 제일 먼저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이후 지방을 분해해 사용합니다. 섭취한 탄수화물이 적으니 지방산의 대사 부산물인 케톤체를 사용해 몸속 지방이 속속 빠져 결국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이 저탄고지 식단의 원리입니다. 이 때문에 몇 년 전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케톤식을 ‘지방의 반란’으로 소개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지방이 살을 찌우는 영양소가 아니라 살을 빼주는 영양소라고 재정의했습니다. 이후 버터와 기름 등을 과량 섭취하는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었고, 다양한 논쟁점이 있는 와중에도 그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 모양새입니다.
# 학회의 이례적 경고 성명
상당히 과학적으로 보이는 식단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위험해 보일까요? 남편도 저탄고지 식단을 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밝히면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배우자의 식단이 정말 괜찮은지, 의사들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원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지중해식 다이어트 등 세상에 유행한 수많은 다이어트 가운데 이례적으로 과학자들이 모인 학회에서 경고한 식단이 바로 저탄고지 식단이었습니다. 학회가 나서 경고한 유일한 식단인 것 같습니다.
대한내분비학회·대한당뇨병학회·대한비만학회·한국영양학회·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2016년 10월 26일 “저탄수·고지방 식사가 장기적으로 체중 감량 효과를 보기 어렵고 건강과 영양학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방점은 ‘영양 문제’와 ‘장기적인 효과가 없다’에 있어 보입니다.
# 저탄고지 임상시험 논문 없어
지방은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지만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이 있어 적절하게 섭취해야 합니다. 저탄고지 식단은 지방 섭취율이 높기 때문에 체내에 이롭지 않은 포화지방산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포화지방산을 과다 섭취하면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과량의 지방 섭취 탓에 다양한 음식 섭취가 어려워져 영양소의 불균형과 섬유소 섭취 감소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안전성에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5개 학회가 공동 발표한 성명을 보면 저탄고지 식단의 체중 감량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높은 임상시험 논문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또는 저지방 다이어트에 관한 논문은 국제 저명 학술지에 많이 나와 있어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분석 및 비교 대조가 가능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 단기 체중 감량 효과 크지만 지속 어려워
‘나는 오랫동안 또는 평생 저탄고지 식단을 유지해 꼭 살을 많이 빼겠다’고 마음먹고 실제 실행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란 것은 건강을 위해 평생 지속해야 하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가능한 한 쉬운 방법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문가들도 바로 이 지점에서 저탄고지 식단의 어려움을 지적합니다.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먼저 탄수화물 섭취량을 20% 정도로 줄이면 단기간 체중 감량 효과는 큰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면 여느 다이어트 식단과 비교해 체중 감량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스웨덴 건강기술평가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저탄수화물식 식단은 시작 후 6개월까지는 저지방 다이어트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탄수화물을 줄이는 식사법을 6개월 이상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일단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국에서 유독 이 저탄고지 방법이 유행을 끈 이유는 한국의 밥상이 고탄수화물 식단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한국 밥상은 탄수화물 함량이 65% 이상으로 고탄수화물 식단에 해당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한국 국민건강 양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인구의 하루 탄수화물 섭취량은 평균 300g으로 하루 식단의 63% 정도를 차지합니다. 쌀밥과 면요리를 즐기는 한국 식탁에서 ‘살이 금방 빠진다’는 저탄수화물 식단은 우리를 쉽게 유혹합니다. 그러나 매일 마주하는 고탄수화물 식탁의 환경 속에서 저탄수화물 식단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저탄고지 식단의 중도 하차율이 높은 이유일 것입니다.
# 살을 빼주는 영양소 비율은 없다
이제 궁금해집니다. 이제까지 유행한 수많은 다이어트 식단 가운데 전문가들이 인정한 지속가능하면서도 다이어트 효과도 있는 식단은 무엇일까요? 아쉽게도 현재까지 대부분의 전문가 집단은 체중 감소를 위한 특별한 식단은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별한 식단보다는 총 에너지 섭취량을 줄이고, 섭취량을 활동량보다 적게 유지하는 것이 체중 감소 및 성인병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권고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 공중보건대 프랭크 삭스 교수 연구팀은 저탄수화물 또는 고지방·고단백 식단이 체중 감량 효과면에서 실제 차이가 있는지 비교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2009년 발표됐습니다. 연구진은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30~70세의 실험참가자 811명을 네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모든 실험 참가자는 자신에게 요구된 열량보다 750cal 적게 섭취하되 그룹마다 섭취하는 영양소의 비율이 달랐습니다. 각각 이 식단대로 꾸준히 섭취했고 6개월마다 체중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각각의 다이어트 그룹은 6개월 후 평균 약 6㎏씩 체중이 감소했습니다. 그룹 간 체중 감소량의 차이는 0.5㎏으로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탄수화물을 줄이든 지방이나 단백질을 늘리든 특정 영양소에 편중된 식단의 다이어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삭스 교수의 연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가장 편한 다이어트가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다’가 아닐까요? 먹고 싶은 음식을 굳이 꾹꾹 참아가며 유지하는 식단보다는 골고루 섭취하되 총 섭취 칼로리를 줄여나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다이어트 식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19.12.24
/ 2022.05.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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