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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3) DNA포렌식 뒤에 숨은 핵심 기술은?

푸레택 2022. 5. 21. 12:55

(3) DNA포렌식 뒤에 숨은 핵심 기술은?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daum.net)

 

(3) DNA포렌식 뒤에 숨은 핵심 기술은?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국내 최장기 미제사건이자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50대 이모씨가 지목됐다. 경찰은 연쇄살인사건 10건 중 5·7·9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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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국내 최장기 미제사건이자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50대 이모씨가 지목됐다. 경찰은 연쇄살인사건 10건 중 5·7·9차 사건 증거물에서 공통적으로 이씨의 DNA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DNA 증거를 바탕으로 이씨가 진범일 확률이 99.99%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에서 DNA를 추출해 용의자를 찾는 과학수사 방식을 ‘DNA포렌식’이라고 한다. DNA가 범인 검거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생명체는 몸속 세포에 DNA라는 유전물질을 갖고 있다. DNA는 디옥시리보오스 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영어 약자다. DNA는 4종류의 염기(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가 실처럼 배열돼 있고, 두 가닥의 실이 꽈배기처럼 꼬여 있다.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DNA 염기 배열 패턴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점이 범인 검거의 ‘열쇠’가 된다.

범인의 땀 한 방울로 결정적 증거

복잡하게 배열돼 있는 염기를 살펴보면 사람마다 특정 부위에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횟수가 다르다. 이것이 ‘짧은 연쇄 반복 서열(STR)’이다.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의 STR과 용의자의 STR을 비교해 일치 여부를 따진다. 최근 과학수사에서는 STR을 20개까지 비교분석해 범인 검거에 증거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STR 비교 개수가 늘어날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자손에게 유전시키는 핵심 물질이 DNA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DNA를 범인 검거의 수단으로 쓰자는 아이디어는 1980년대 중반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 제프리가 고안해냈다. 제프리는 우연히 한 연구원 가족의 DNA 서열분석 결과를 관찰하던 중 가족 간에 DNA가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개개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DNA지문법’을 제안했다. DNA지문법은 곧바로 범죄 해결에 활용됐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1980년대 중반부터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사건 발생 당시 한국에서 DNA포렌식을 못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실제 당시 사건 수사관들은 일본에 증거물을 보내 DNA포렌식을 시도했으나 식별에 실패했다.

과학수사 기술의 발달로 최근에는 극미량의 침, 땀, 정액 같은 인체 시료에서 DNA를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범인이 쓰다가 버린 장갑의 내피에서 범인의 피부 상피세포를 채취하거나 범인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에 묻은 침에서 DNA를 검출할 정도로 기술이 고도화됐다.

극미량의 인체 시료에서 DNA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라는 기술 덕분이다.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가 1988년 발표한 이 기술은 생명과학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멀리스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기술 발표 5년 만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어떤 기술이기에 전세계가 멀리스의 발상에 관심을 기울였을까? PCR은 긴 DNA 실타래 중 원하는 부위만 여러 번 복제해 증폭시키는 기술이다. 증거물에서 직접 추출한 DNA는 극소량이라 직접적으로 분석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PCR 기술로 DNA포렌식에 필요한 부분만 증폭시켜 분석하면 분석이 수월해진다. 모래밭에서 옥수수 한 알은 찾기 어렵지만 팝콘 한 봉지는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멀리스는 두 가닥으로 꼬여 있는 DNA에 90도 이상의 고열을 가해 풀어낸 뒤, 한 가닥의 DNA에 특정 효소를 넣어 원하는 DNA를 원하는 만큼 복제해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PCR의 발견으로 DNA분자 한 개를 몇 시간 안에 수백만 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를 통해 암이나 당뇨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연구뿐 아니라 범죄자 검거를 위한 DNA포렌식, 몇백만 년 전에 사라진 동물의 화석으로부터 DNA를 추출할 수 있게 됐다. PCR이 없었다면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해독해 인간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던 인간게놈프로젝트(HGP)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PCR은 바이오 연구실이라면 어디든 사용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 됐다. PCR에 사용되는 효소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효소’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수십만 년 이상 버티는 DNA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수십 년이 지나서도 증거물에서 범인의 DNA를 추출해 분석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의 몸은 단백질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쉽게 부패한다. 침이나 정액 등 체액도 단백질 성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쉽게 부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가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DNA는 4종류의 염기로 구성된 고분자화합물이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가 적당하면 이론상 수십만 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유전자 염기서열의 일부가 누락될 수는 있지만 아예 변형돼 다른 생물종으로 변하거나 범인의 DNA가 타인의 DNA로 변하지는 않는다.

고생물학자들이 수십만 년 전 화석에서 DNA를 추출해 연구하는 것도 DNA가 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생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해 인류의 기원과 이동경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4000년 전 멸종된 매머드의 사체를 발굴해 DNA를 추출한 뒤 매머드를 복제하겠다고 나선 과학자도 있다.

성범죄의 경우에는 다른 세포보다 DNA가 더 잘 보존되는 편이다. 정자는 머리 부분에 DNA를 갖고 있다. 정자는 난자의 막을 통과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머리 부분이 단단한 편이다. 따라서 정자 머릿속에 들어 있는 DNA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DTT라는 특수물질 처리를 해야 한다. 다만, 사건 현장에서 주변 온도와 습도가 높거나 토양에 오염되면 미생물에 의해 부패돼 DNA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괴짜, 궤변가, 그리고 마약 중독자였던 캐리 멀리스

캐리 멀리스는 생명공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연구업적을 내놓았고 노벨상까지 받았지만 이후 연구활동을 하지 않았다. 중합효소연쇄반응을 고안할 당시 재직 중이던 생명공학업체 ‘시터스’에서 퇴사해 컨설턴트로 활동했을 뿐 이렇다 할 연구는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멀리스는 엉뚱한 행동과 말로 구설수에 올랐다. 서핑 광이었던 멀리스는 알몸으로 서핑을 하거나 HIV가 에이즈 발생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든지,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LSD라는 환각제를 복용했고 직접 실험실에서 LSD를 합성한 경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편의 논문만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쥔 대단한 발상을 한 과학자였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이후 그가 언론에 언급된 것은 기이한 행적과 궤변이 전해질 때뿐이었다고 한다. 멀리스는 지난 8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

목정민 과학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19.10.02

/ 2022.05.2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