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희망과 과대광고를 대하는 법 (daum.net)
2000년대 중반부터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과 같은 신경영상 기술을 활용해서 구매 행동 이면의 뇌 활동을 연구하는 분야(신경마케팅)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코카콜라와 펩시의 맛을 구별하지는 못하면서도 코카콜라를 더 선호하고, 전전두엽의 신경활동이 이런 선호를 반영하더라”와 같은 신경마케팅 연구는 무척 흥미로웠고, 그런 만큼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렇게 특정한 학문이 인기를 끌 때면 으레 해당 학문에 대한 과대광고와 허황된 믿음도 커진다. 과대광고와 허황된 믿음은 처음 한동안은 해당 학문 분야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끌어들이고, 활발한 연구를 촉발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문제가 생긴다. 학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허황된 믿음에 근거한 불안이 학문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킨다.
실제로 신경마케팅이 그랬다. 신경마케팅 연구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마법의 기술’처럼 소개되고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늘어나자, 신경마케팅은 뇌과학을 악용한 사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신경마케팅 기술로 판매자가 내 뇌 속의 구매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경마케팅 연구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신경마케팅으로 판매율을 높일 수 있다며 가짜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이들도 등장했다.
그러던 2010년 ‘네이처 신경과학지’에 신경마케팅에 대한 사람들의 희망과 과대광고(hope and hype)를 정리한 리뷰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는 설문과 같은 종래의 수단들과 비교했을 때 신경영상 기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고, 신경마케팅이 어떤 사업 분야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동안의 연구로 밝혀진 것은 무엇이고 허황된 믿음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지 조목조목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나쁜 점이 있다며 그동안의 연구를 통째 비판하는 대신 신경마케팅 붐에 힘입어 알게 된 부분과 과대광고에 해당하는 부분을 잘 나누어준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 인공지능 분야의 과대광고
어떤 학문 분야든 붐을 일으킬 때면 신경마케팅에서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 분야도 어쩌면 그럴지 모르겠다. 지난달 ‘사이언스’에서 놀라운 기사를 보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폭증했지만, 진정한 진전이라고 할 만한 성과는 의외로 드물다는 것이다. 다크레마(Dacrema) 등이 작년에 출간한 연구에 따르면, 최신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7가지 추천 시스템 (순위나 취향 등을 예측해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6개가 딥러닝을 활용하지 않은, 훨씬 더 간단한 알고리즘보다 나쁜 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몇몇 다른 이들도 ‘인공지능이 실제로는 거의 개선되지 않으면서 빠르게 개선되는 것처럼 보임’을 암시하는 글을 냈다. 예컨대 딥러닝을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사진 속 픽셀을 일부 바꾸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엉뚱한 결과를 내곤 한다. 가령 사람은 변화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판다 곰 사진을 살짝만 바꿔서, 멀쩡히 사진을 잘 인식하던 인공지능이 판다를 긴팔원숭이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제안됐는데 최신 방법들이 초기 제안된 단순한 방법과 거의 비슷한 성능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연구 아카이브(종종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을 미리 업로드해두는 웹페이지)에 보고한 라이스 등의 연구자는, 수년간 진전이 없는데도 진전이 있다고 믿어진 게 더 놀랍다고 했다.
내가 참고했던 5월27일자 사이언스 기사에 따르면 인공지능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은 2014년에 만들어진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그럴듯한 가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부분과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부분을 함께 훈련시켜서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방법) 등 몇 개 알고리즘을 제외하면 드물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은 연구자들이 이미 출간된 알고리즘과 자신이 제안한 방법을 엄밀하게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추정되었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학자들은 바로 해결책을 찾아나섰다. 대표적인 인공지능 학회 중 하나인 뉴립스(Neurips)에서는 올해 학회 논문 제출자들에게 본인의 알고리즘을 이전의 알고리즘들과 충실하게 비교하도록 요구했다. 학회 활동을 통해 이전 알고리즘과 엄밀하게 비교하는 과정에 익숙해지다 보면, 학계 전체가 변해갈 것이다. 또 뉴립스에서는 올해부터 학회 논문 제출자들에게 본인의 연구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논의하는 별도의 섹션을 쓰도록 했다. 인공지능이 악용될 가능성 및 악용 가능성에 대한 사회의 염려를 반영하여 도입된 변화로 보인다. 신경마케팅이 그랬듯, 인공지능의 거품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 포스트 코로나의 희망과 과대광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붐인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와 뉴노멀이다. 신경마케팅 붐과 인공지능 붐이 신경마케팅 연구와 인공지능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었듯,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준비를 촉발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과열된 열기가 다소간 지난 뒤에, ‘포스트 코로나’라는 주제에 관심이 조금쯤 줄었을 때라도, 누군가 차분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안내해주길 바란다. 요만큼은 붐이던 시절의 준비 덕분에 얻어진 것이고, 요만큼은 과대광고였다고. 그렇게 조목조목 따져보는 경험이 쌓이면 사회 전체의 실력이 되지 않을까.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20.07.02
/ 2022.05.20(금)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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