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식욕을 조절하는 포만감 (daum.net)
뇌교에 있는 부완핵은 내장의 기계적인 자극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여 음식 섭취와 물 마시기를 조절하는 다른 부위로 신호를 보낸다.
여름옷은 다른 계절에 입는 옷들에 비해 노출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되면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이들이 늘어난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기름진 야식과 달달한 간식, 때로는 배고픔까지 참아가며 열량 섭취를 줄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열량 섭취를 조절하기 위해 흔히 활용되는 방법 중의 하나가 토마토처럼 포만감을 주지만 열량은 낮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포만감은 식욕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가 고플 때는 하다못해 장을 보다가도 먹거리를 많이 사게 되지만, 배가 부르면 식욕이 줄어서 기름진 치킨과 피자를 먹을 위험(?)이 감소한다. 올해 초 김동윤 등의 연구자들(김성연 교수 연구팀)이 네이처에 출간한 논문을 통해 포만감이 어떻게 식욕을 조절하는지 알아보자.
포만감은 내장기관이 기계적으로 팽창했다는 사실이 뇌에 전달되었을 때 생기는 느낌이다. 내장기관의 팽창이 어떤 경로를 통해 뇌로 전해지고, 이 신호가 어떻게 식욕을 조절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이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팀은 뇌교에 있는 부완핵(parabrachial nucleus)에 주목했다. 뇌교는 뇌의 아래쪽에 있는 부위로 척수에서 뇌로, 뇌에서 척수로 신호가 지나가는 통로이다. 뇌교는 얼굴근육의 움직임(씹기, 삼키기, 표정 등)과 호흡, 내장 운동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부완핵은 내장의 기계적인 자극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여, 음식 섭취와 물 마시기를 조절하는 다른 부위로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배부른 정도에 따라 식욕을 조절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있다.
연구자들은 생쥐 실험을 통해, 프로다이놀핀 유전자라는 유전자를 발현하는 부완핵 신경세포들이 물을 마시거나 고체로 된 음식을 섭취할 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신경세포들은 음식의 맛이나 온도 등 다른 요인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혀나 식도, 위장을 기계적으로 누르거나 팽창시키는 자극에는 반응했다. 더욱이 이 신경세포들이 반응하는 정도는 위장이 팽창하는 정도에 비례했다. 이상의 결과는 상부 소화기관의 기계적인 팽창이 부완핵에 있는 이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연구팀은 소화기관의 팽창이라는 두개골 바깥의 정보가 미주신경(심장, 허파, 소화기관의 여러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을 통해 두개골 안쪽의 부완핵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주신경을 절단했더니 소화기관의 팽창이 부완핵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현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화기관 팽창으로 인한 부완핵 신경세포들의 활동은 식사량과 수분 섭취 감소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부완핵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면 생쥐가 음식을 먹으려고 시도하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일단 음식을 먹기 시작한 후에는 부완핵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어도 먹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다. 포만감이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것을 제어해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일단 먹기 시작했을 때 멈춰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부완핵 신경세포들이 억제되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시게 될까? 그렇지는 않았다. 수분(또는 염분)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완핵 신경세포들이 억제되었다고 해서 수분(또는 염분)의 섭취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염분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부완핵 신경세포들이 억제됐을 때 염분 섭취가 늘어났다. 이 결과는 부완핵 신경세포의 억제가 식욕(또는 갈증)을 직접 늘리기보다는 식욕(또는 갈증)이 있을 때 섭취량을 늘려준다는 것을 뜻한다. 하기야 먹고 마시는 것처럼 중요하고 섬세한 일이 하나의 뇌 부위의 활동만으로 조절되어서는 위험하지 않겠나. 연구자들은 체내 영양분과 수분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식욕에 관여하며, 소화기관의 각 부위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정보가 음식 섭취를 단계적으로 조절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첨단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먹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과업이기도 하다. 일하다가 끼니를 놓치는 사람들, 불규칙하고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으로 대사증후군에 걸린 사람들, 다이어트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 스트레스로 폭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그 증거다. 소개된 논문은 식욕의 일부분만 알려주지만, 무언가를 먹고 싶은 나를 이해하고, ‘먹는 일’을 보다 편안하고 능숙하게 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먹는 일 하나도 자신을 이해하는 즐거운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ㅣ경향신문 2020.07.30
/ 2022.05.20(금)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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