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이야기를 지어내는 뇌 (daum.net)
사람과 동물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행동을 해야 보상을 얻을 수 있는지 학습해간다. 이런 학습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온갖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특정한 요인을 골라 결과와 연결지을 때 이야기가 생겨난다. ‘착한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원인) 부자가 됐다(결과)’라는 인과관계에 기존 생각을 보태 살을 붙이는 것이다. 사회적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인과관계를 가진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이 원인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엔 특정한 넥타이를 맨다든가 하는 징크스가 생긴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오인하는 현상은 다른 동물들에서도 관찰된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배고픈 비둘기를 새장에 넣고, 비둘기가 무슨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먹이를 주었다. 먹이를 주는 시간 사이의 간격 동안 어떤 비둘기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고, 어떤 비둘기는 새장의 구석으로 머리를 밀어넣는 행동을 반복했다. ‘먹이의 배달’ 전 했던 행동과 ‘먹이의 배달’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한 비둘기들이 각자 원인으로 추정한 행동을 반복한 것이다.
이렇게 시간적 순서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것은 흔히 발생하는 오류이며, 과학과 관련된 기사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패턴이기도 하다. ‘백신 접종 후 사망’ 기사들도 이런 패턴을 따른다. 매일 고령자 수백명이 사망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맞은 백신의 종류가 다양했으며, 독감 백신을 수십년간 별 탈 없이 맞아왔는데도, 백신이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앞선 비둘기 실험에서 비둘기들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굳이 무언가를 한’ 뒤에 벌어진 사건(먹이의 배달)을 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였는데,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생긴 나쁜 결과보다는, 무언가를 한 뒤에생긴 나쁜 결과를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백신 접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18~2019년 독감 시즌 동안 미국에선 독감으로 49만명이 입원했고 34만명이 사망했다. 동 기간 우리나라에서도 300여명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이는 독감 백신을 맞은 후 사망한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데도 백신 접종이 더 큰 위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징크스 또는 가짜과학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먼저 감정적 이유가 있다. 대다수 사람은 징크스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징크스를 따르지 않았을 때 생길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에 징크스가 계속된다. ‘문 닫은 채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와 같은 가짜과학도 마찬가지다. 굳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기에 행동은 좀처럼 안 바뀌고, 사람들을 겁먹게 하는 가짜과학은 계속된다. 2019년 미국에서 홍역이 유행했던 것도, 백신에 대한 가짜과학에 속아 두려움을 느낀 이들이 접종을 기피해서였다.
둘째,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은 일상에서 타인의 신뢰도 평가 방식으로 전문가의 신뢰도를 판단하곤 한다. 예컨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대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경향이 과학적 신뢰도를 평가할 때도 적용된다. 실제로 <조국흑서>를 쓴 모 기자가 백신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낮다고 설명하자, 그가 친정부 성향이라 거짓말을 한다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셋째, 비판적 사고에 대한 오해다. 비판적 사고는 기계적 중립이 아니며 엄밀한 조사 없이 의혹을 던지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사실관계의 정합성과 경중을 따져 엄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어떤 의혹이든 수용하는 게 비판적 사고’라고 오해한다. 바로 이 오해를 악용해 ‘기후변화는 가짜다’ 등의 가짜과학이 수십년간 사람들을 속여왔다.
불안하고 못 미더운 심정은 공감한다. 왜 아니겠는가. 내 건강과 관련된 일인데.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틀린 결정을 하기 쉽다. 그러니 백신의 잠재적 위험성에만 집중된 시야를 넓혀, 저울의 반대편에 독감으로 인한 사망률과, 트윈데믹으로 병원이 과부화될 위험도 올려놓고 생각해보자. 어찌 해야 할지.
송민령 공학박사ㅣ경향신문 2020.10.29
/ 2022.05.20(금)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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