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과학을 소통하는 더 나은 방법 (daum.net)
내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이유는 뇌과학이 악용되기보다 선용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면 어려운 것 같지만, 우리말로 풀어 쓰면 그냥 ‘과학 소통’이다. 좋은 소통은 상대의 배경지식과 입장을 이해한 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양쪽의 욕구를 충족하고, 상호 간의 오해를 풀면서 이해를 늘린다. ‘과학 소통’도 마찬가지다. 과학과 대중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높이며, 필요한 과학적 사실을 정확히 전할 수 있어야 좋은 ‘과학 소통’이다. 그래서 ‘과학 소통’은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서 대중에게 하향식으로 전하는 ‘과학 대중화’보다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다.
‘과학 소통’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올해만큼 과학 소통의 중요성을 통감한 적이 없다. 코로나19를 치료하려고 살균제를 먹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5G 기지국에 불을 지르고, 코로나는 가짜라고 믿는 이들이 방역규칙을 위반하는 등 가짜과학(내지는 반과학)의 폐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과학자들이 직접 설명하러 나서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별로 효과적이지 않거나 불신만 증폭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특히 코로나와 관련된 과학 소통은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특징까지 겸해서 어렵기도 했다.
말을 해도 안 통하고, 보고 있자니 속이 타고…. 아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카산드라는 트로이 사람인데 아폴론이 카산드라에게 예언력만 주고 설득력은 빼앗아버려서, 아무리 진실된 예언을 외치고 다녀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카산드라는 나라가 망하고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누구던가. 실험하고, 측정하고, 방법과 결과를 공유하면서 길을 찾을 때까지 계속하는 사람들이다. 지난달 블래스트랜드(Blastrand) 등이 쓴 “증거 소통을 위한 다섯 가지 규칙”이라는 논평이 ‘네이처’에 실렸다. 이 논평은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으며, 논평으로서는 드물게 첨부 자료까지 있어서, 과학 소통이 원활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우선, 정보를 알려주되 설득하지 말라고 한다. 타인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소개하는 정보의 균형을 갖추라고 한다. 예를 들어 백신이라면, 백신을 맞을 때의 이익과 위험, 백신을 맞지 않을 때의 이익과 위험 및 각각의 비중을 다 알려주고, 선택은 스스로 하게 하라고 한다. 이때 증거의 관련성과 품질도 잘 설명하고, 출처를 포함하라고 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미안해하지 말고, 무엇을 모르는지 담백하게 밝히라고 한다. 단, 무작정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상되는 결과의 범위를 설명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음주부터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라고 확언하기보다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1~2주 사이에 일일 신규 확진자가 900~1200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가 모르는 범위를 명확하게 밝힌 언설이다. 또 지금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할 예정이며, 언제쯤 알 수 있을지를 밝히라고 권한다. 필요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사람들이 불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청중이 가진 모든 우려와 질문에 답하라고 한다. 청중의 우려를 사소하게 여기면, 무언가를 숨긴다는 의혹을 받거나, 청중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아가 청중이 어떤 오해를 할지 미리 예상하고, 예상된 오해에 대비해 설명할 것을 권했다.
과학 소통에 종사하는 과학자와 기자들에게나 필요할 법한 정보를 이곳에 쓰는 건, 바람직한 과학 소통의 방법을 알고 지켜보는 사람이 늘어야, 과학 소통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믿어서다. 코로나에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정확한 과학 지식이 핵심적이다. 안타깝게도 한 해 동안 누구의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적잖았다. 우리는 내년에도 한동안 코로나를 견뎌야 할 테지만, 코로나에 대한 과학을 소통하는 방식만큼은 올해보다 부쩍 성장해 있길 바란다. 올 한 해 애쓴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송민령 공학박사ㅣ경향신문 2020.12.24
/ 2022.05.20(금)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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