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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잠자는 뇌

푸레택 2022. 5. 20. 20:34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잠자는 뇌 (daum.net)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잠자는 뇌

[경향신문] 꿈처럼 멀기만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저녁 모임이 줄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가라앉으면서 고요하게 집 안에 머물다 일찍 잠드는 날이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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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멀기만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저녁 모임이 줄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가라앉으면서 고요하게 집 안에 머물다 일찍 잠드는 날이 늘었다. 잠자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앙투안 아다만티디스(Antoine Adamantidis) 등의 2019년 논문을 참고하여 수면에 대해 알아보자.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을 주는 수면제를 만들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약이 조만간 등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뇌가 잠들고 깨어나는 메커니즘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 이론에서는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마치 스위치처럼 조절된다고 본다. 시상하부에서 수면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그룹과, 깨어남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그룹이 있는데, 이 둘이 서로 경쟁하면서 잠자는 상태와 깨어나는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고, 신경세포의 활동이 많아지며, 신체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기간인 렘(REM)수면과 비렘(non-REM)수면이 번갈아 나타난다. 이 이론에서는 렘수면과 비렘수면도 이처럼 서로 억제하는 신경그룹에 의해 조절된다고 본다.

다른 대표적인 이론에서는, 시상과 피질 신경세포들의 조화로운 활동이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 넘어가면서 잠듦과 깨어남,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일어난다고 본다. 두 이론 모두가 수면 현상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중 어느 이론이 더 타당한지 혹은 다른 이론이 나을지는 연구가 더 이루어진 후에야 밝혀질 것이다.

수면은 생각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비슷해 보이는 전신마취와 비렘수면을 비교해 보자. 전신마취 동안에는 신경세포들이 느린 뇌파를 보인다. 또 피질 영역들 간의 정보 통합이 어려워지면서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둘 다 비렘수면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비렘수면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시상, 시상하부, 신피질 등의 신경회로는 전신마취에도 관여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다. 예컨대 잠을 자는 동안, 신경세포들은 막전위가 높아져서 신경세포들이 활동성이 높아진 업(UP) 상태와, 막전위가 낮아져서 신경세포의 활동이 낮아진 다운(DOWN) 상태를 오간다. 신경세포들이 업 상태와 다운 상태를 오가는 현상은 전신마취에서도 일어나지만, 마취 상태에서는 다운 상태가 조금 더 길고, 업 상태들 간의 편차도 덜하다고 한다. 또 잠을 자는 동안에는 느린 뇌파가 전두엽과 연합영역에서 두드러지지만, 마취된 동안에는 느린 뇌파가 신피질 전반에서 고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처럼 작은 차이들이 수면의 기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비렘수면 동안에는 해마 신경세포들이 깨어있을 때 보였던 활동 패턴을 빠르게 재생하는데 이것이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연구에서는 해마 신경세포들의 재생이 비렘수면 중에서도 잔물결 같은 뇌파가 잠시 나타나는(sharp wave ripple) 동안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잔물결 같은 뇌파의 강도가 클수록 쥐들은 이전에 탐색한 장소를 더 잘 기억했고, 잔물결 뇌파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으면 잘 기억하지 못했다.

수면은 신경세포들 간 연결세기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신경세포 X와 A의 연결세기는 1이고, 신경세포 X와 B의 연결세기는 3인 경우를 상상해보자. 만일 X 신경세포가 학습에 따라 연결을 강화하기만 한다면 X와 A의 연결세기가 11이고, X와 B의 연결세기가 15인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1과 3은 300% 차이가 나지만, 11과 15는 약 5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 신경세포 X는 A보다 B로부터 오는 입력이 훨씬 더 중요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X-A 연결세기와 X-B 연결세기가 충분히 다르도록 연결세기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잠자는 동안에 일어난다고 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숨가쁘던 시절에는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울 때가 많았다. 전 세계가 고요해진 요즘, 잠이라도 마음 편하게 푹 주무시기를.

송민령 공학박사ㅣ경향신문 2021.02.18

 

/ 2022.05.20(금)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