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꽃산 꽃글] 바위떡풀
고향 근처의 해인사는 여러 번 가보았지만 하늘 근방의 가야산은 처음이었다. 깊은 산이 큰절을 낳는 법인가. 막연히 해인사 뒷산인 줄로만 알았더니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경북 성주의 백운동에서 출발해 만물상-서성재-칠불봉-상왕봉으로 오르는 길. 첩첩 봉우리들이 장엄하게 도열했다.
몇몇 기준으로 세계를 나눈 그리스 철학자들을 들먹일 필요가 무어 있으랴.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도 무게로 나눠볼 수 있겠다. 그 가벼움조차 아예 가늠할 수 없는 허공과 티끌 같은 먼지를 모아 몸집을 키운 구름들 그리고 말랑말랑한 흙과 단단한 바위들이 차례로 배열된다. 그사이 어디쯤에 팔랑거리는 나뭇잎들과 제법 딱딱해진 나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해 가을걷이가 끝나고 동네에서 단풍구경을 해인사로 갔었지, 성철 스님 사신다는 암자에 갔다가 입구를 돌아들었더니 큰 방구(바위)가 있어 한참 놀다 왔었지, 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정확한 기억. 그날 어린 나도 따라갔었다. 그러니 그 바위에 내 궁둥이가 붙었다 떨어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바위는 그냥 무거움만으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 존재이다. 여러 특별한 성분을 흙에 공급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식물의 뿌리가 물과 양분을 찾아 캄캄한 지하를 헤매다가 바위를 보면 맛있는 사탕이라도 만난 듯 쪽쪽 빨아먹는 것!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늘어선 만물상에서 잠시 쉬는 동안, 언젠가 경남 합천의 해인사에서 가야산 오를 때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곳, 백련암 그 어드메쯤을 가늠해보는데 가까운 바위 틈에서 바위떡풀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지만 틈이 있고 그 틈으로 난 길이 있다. 틈은 좁지만 길은 깊고도 깊다. 그 길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인 바위떡풀. 척박한 곳에 웅크려 우주로부터 이 세상의 배후를 밝히는 신호라도 포착하겠다는 듯 접시안테나처럼 쫑긋 서 있는 바위떡풀.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ㅣ경향신문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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