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애기장대, 식물의 비밀 아낌없이 알려주다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애기장대, 식물의 비밀 아낌없이 알려주다
애기장대는 초봄에 산기슭이나 길가·화단에서 흰색 꽃을 피우는 식물로, 커봐야 30㎝ 정도입니다. 무·배추, 냉이와 같은 십자화과인데, 꽃이 좁쌀만큼 작은데다 튀는 외모도 아니어서 냉이려니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여튼 꽃 애호가들은 애기장대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매주 수요일 카오스재단이 진행하는 강연 ‘식물 행성(Plant Planet)’을 듣다보니 가장 많이 나오는 식물 이름이 애기장대였습니다. 지난주까지 8주 강연마다 “애기장대로 실험을 했더니...”라는 말이 빠진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카오스 식물 강연 4강에서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최길주 교수는 “애기장대로 실험을 했더니 발아율이 22도에서 높았고 그 이상 올라가면 떨어졌다”고 했고, 지난주 8강에서 서울대 생명과학과 이일하 교수는 애기장대 현미경 사진을 보여주며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을 설명했습니다. 주로 정상적인 애기장대와 돌연변이 애기장대를 비교해 어떤 유전자가 있고 없을 때 식물체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연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식물이 잘 자라는지 알아본 실험도 애기장대를 갖고 했다고 합니다.
애기장대는 뿌리잎이 10개 정도 로제트형으로 모여난 다음 긴 꽃대를 올려 작은 흰 꽃을 피웁니다. 그 모습이 아래쪽은 꽃다지 같고 위쪽은 냉이 같았습니다. 다만 열매 모양이 냉이는 삼각형이지만 애기장대는 선형(線形)입니다. 주로 꽃다지, 냉이와 어울려 살기 때문에 잘 살펴보면 아파트 화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자란다고 합니다.
이렇게 평범한 애기장대가 왜 식물 강연에서 빈번하게 이름이 나올까요? 그것은 이 식물이 식물 과학에서 대표적인 모델 식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동물학자들이 연구에서 초파리, 쥐, 영장류 같은 모델 동물을 쓰듯이 식물학자들은 애기장대를 모델 식물로 쓴다는 것입니다.
애기장대는 발아해 씨가 맺힐 때까지 1세대 기간이 6주로 짧다고 합니다. 빨리 자라고 빨리 꽃이 피는 것이죠. 또 유전체(genome) 크기가 작고 식물체가 소형으로 배양이 용이해 실험재료로 적합하다고 합니다. 애기장대의 유전자 총수는 2만7000개인데 2000년 이미 전체 유전체 분석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도 쉬운 장점까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다양한 장점 때문에 유전학, 생리학, 발생학 등 식물학의 여러 분야에서 애기장대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애기장대 연구에 관한 데이터를 모아 놓은 미국 애기장대 자원 센터(ABRC)에 등록된 연구 결과만 90만 건에 육박했습니다. 애기장대가 인류에게 식물의 비밀을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식물학자는 “나에게 애기장대는 세상과 생물을 이해하는 창(窓)”이라고 했더군요.
지난달 13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유리 교수의 ‘건축탐구 잎’ 강연에서는 애기장대 자체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 교수도 애기장대로 식물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오늘도 혹사당하는 애기장대, 애기장대가 고생이 많네”라는 댓글을 소개하자, 이 교수는 웃으며 “애기장대,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애기장대에 노벨상을 주어야”, “과학계는 애기장대에 공로상을 주어야” 같은 댓글도 달렸습니다.
식물실험실 대학원생들은 애기장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박사후 과정인 카오스 강연 사회자는 “실험 식물의 복지는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다. 애기장대 종자만을 위한 냉장고도 있다. 저희가 쉬는 날 없이 매일 잘 자라는지 체크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식물 과학자들은 매일같이 애기장대와 더불어 울고 웃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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