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꽃산 꽃글] 해바라기
미국에는 외교부가 없다. 국무부 장관이 외국을 상대한다. 세계 각국의 일이 모두 자기와 관련된 것이라서 그렇단다. 왜 남의 나라 고민까지 짊어지려고 할까.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어서 중국이다. 중화는 중앙의 꽃, 곧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며 나머지는 다 오랑캐라는 뜻이란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면서 그런 건 관심사항이 아니다.
국경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자. 우주에도 중심이 있을까. 몸의 중앙에 배꼽이 있듯 우주에도 절대기준점이 있을까.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상대적 운동이 있을 뿐 중심이 없다. 중심이 없으니 그 모든 곳이 다 중심이다. 우리들은 너나없이 각자 걸어 다니는 우주의 중심기관이다.
예로부터 중심이나 중앙, 센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힘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 말고 정면에 대해 궁리해 본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냥 무심히 보게 되는 '앞'이 정면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정면은 어디일까.
추석 연휴의 마무리를 설악산에서 하였다.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니 달려온 길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죽죽 뻗은 나무들. 비탈진 곳에서도 나무들은 꼿꼿하게 자란다. 이는 나무들에게 일생을 통해 지향하는 정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정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두리번두리번 눈치 보며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추석 사흘 전, 경향신문의 사진 한 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해바라기 꽃이 4일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농성을 하기 위해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 친 천막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피어 있다"는 캡션이 붙어 있었다. 정작 와야 할 이가 오지 않는 곳을 방문한 해바라기. 그 껑충한 꽃을 보면서 세상의 정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해바라기는 해 바라기이지만 늘 해를 따라 도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항상 정면을 향하면서 자라는 꽃. 지금 우리 시대의 정면을 외면하는 이를 따끔하게 바라보는 해바라기.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ㅣ경향신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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