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국가대항 '코로나 올림픽'이 아니지 않은가 (daum.net)
[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 국가대항 ‘코로나 올림픽’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 그만 쓰겠습니다”라고 2019년 12월의 어느 날 칼럼 담당자에게 3년간 연재하던 ‘인물조각보’ 중단을 알렸다. “더 쓰시지요”라고 담당자가 답했는데 나는 곧 연구년이 시작되기에 원고 마감 일정에 매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어떤 계획을 세우셨냐는 질문에 그동안 마무리하지 못했던 책 원고도 쓰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미루었던 교양여행을 계획했다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담당자는 나의 변명에서 핵심을 집어냈고 그 핵심을 설득의 무기로 삼았다. “그러면 여행하시면서 드는 생각을 칼럼으로 쓰시면 되겠네요.” 정확한 요지를 갖춘 청이었기에 거절의 논리는 더 정교해야 했는데 그 논리를 찾아내지 못했기에 연재 중단 계획은 좌절되었다.
대신 ‘여행으로 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기로 하고 이탈리아로 가기 전 첫번째 칼럼을 완성했다. 두번째 칼럼은 밀라노에서 썼다. 그때 처음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한에서 상당히 떨어진 밀라노에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더라도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안심했다. 밀라노에서 로마를 거쳐 설날 연휴 첫날 서울로 돌아왔다. 설날에 가족이 모였으나 바이러스는 화젯거리로 오르지 못했다.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트레블링카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절멸수용소로 갔다가 빈으로 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당시의 문화예술 현장을 탐방할 작정이었다. 빈에서 기차로 부다페스트까지 이동할 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소설 《다뉴브》를 읽을 생각이었고, 부다페스트에서 아르누보 양식의 온천장에서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며 여행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다양한 일을 겪고 목격할 것이며,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관습의 눈으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포착할 수 있을 터이니, 칼럼 소재는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쓸거리가 넘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그 바이러스는 코로나19(COVID-19)라 명명되었고, 사람과 상품의 이동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었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간주했던 국가 간 상품과 사람의 이동이 중단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을 처음 들었던 밀라노는 봉쇄되었다. 내가 예약했던 바르샤바행 비행기도 폴란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취소되었다. 영국으로 보낸 우편물이 비행기도 타보지 못한 채 반송된다는 우체국의 통보를 받았던 그날, 페이스북에서 독일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편지도 반송되었다는 포스팅을 보았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이 되었다.
바이러스는 세계화되었는데 국제기구는 무력하고 세계정부도 없으니 각 나라는 빗장을 걸었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에 전념했다. 어떤 나라는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어떤 나라는 방역 시기를 놓쳤고 대책은 서툴렀다. 한국이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코로나19에 잘 대처하는 동안,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의 실상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찢어졌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넷상에서 사라지고 부정적 뉘앙스가 제거된 ‘국뽕’이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다.
‘국뽕’이 자부심 있는 태도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실제의 감각으로 변주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스포츠 결과를 중계하듯 나라별 확진자 숫자에 순위를 매기고, 최소한의 장례절차도 생략된 채 코로나19로 삶을 마감한 사람의 숫자가 우리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성과지표라도 되는 것처럼 타국의 불행을 구경하는 자세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도쿄 올림픽 대신 국가대항 코로나 팬데믹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19는 하나의 사태이다. 사태 이후를 단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한 더 이상 우리에겐 구경거리이기만 한 ‘남의 나라 일’이란 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는 그 어느 때보다 인류로서의 감각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국뽕’을 에너지 삼은 단독 플레이로는 코로나를 이길 수 없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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