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길

[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 선입견이 견문으로 수정되는 과정, 여행

푸레택 2022. 5. 9. 19:36

[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선입견이 견문으로 수정되는 과정, 여행 (daum.net)

 

[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선입견이 견문으로 수정되는 과정, 여행

[경향신문]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에 가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모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1년 시인 폴론스키에게 유럽 여행의 포부를 털어놓았고, 1862년 6월7일부터 시작한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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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여행으로 쓴다] 선입견이 견문으로 수정되는 과정, 여행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에 가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지 모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1년 시인 폴론스키에게 유럽 여행의 포부를 털어놓았고, 1862년 6월7일부터 시작한 유럽 여행의 감상을 ‘유럽 인상기’라는 제목으로 한 잡지에 연재했다. 유럽을 동경했기에 그곳으로 갔는데, 정작 ‘유럽 인상기’의 최종 결론은 조국 러시아의 재발견으로 그를 이끌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지리부도를 펼치면 신났고, 지구본을 보면 알 수 없는 흥분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제일 좋아했고, 비행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재난 영화의 원조 격인 《에어포트》가 심야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면 졸음을 참아가면서도 꼭 챙겨보았고, 크루즈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러브 보트》 역시 빼놓지 않았다.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오리엔트 특급을 타고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여행하고, 보잉 707을 타고 대륙을 횡단하고, 크루즈 관광으로 배리 매닐로가 노래한 코파카바나에 가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이 되었다. 이제 심지어 늙어가기 시작했지만, 오리엔트 특급은 사라졌고 보잉 707도 단종되었고 크루즈도 못 타봤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를 접했다. 체력이 버텨주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평범한 사람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한 해에 1500만명의 한국인이 외국 여행을 한다.

떠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이미 공항에 도착하기 이전, 여행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신체 에너지의 활성화 상태는 평상시와 달라져 있다. 물론 늘 공항에서는 가스 밸브를 제대로 잠그고 나왔는지 괜한 걱정에 빠지기도 하고,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흔들릴 때는 잠시나마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입국심사를 기다릴 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리는 카프카 소설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뒤로하고 세계 속에 있는 한 개인이 되면, 한국어가 나에게는 모어이자 모국어이기에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언어이지만 어떤 나라에서 한국어는 희귀한 외국어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뜻도 모를 뿐 아니라 발음조차 할 수 없는 문자로 음성을 기록하는 나라에서 그림문자의 현대적 변형인 픽토그램의 인류 보편성에 놀라기도 한다.

세계인이 된, 아니 되려는, 혹은 되고 싶은 나는 시차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내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설득하며 시차를 견뎌내고, 낯선 음식과 잠자리로 인한 불편함은 세계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비행기에서 지구의 지형을 내려다보면서 지리 시간에 배웠던 등고선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내고, 세상이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며, 책으로 익히고 풍문으로 들었던 세상과 실제로 경험하는 세상은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호모 사피엔스의 피부색, 눈동자 색깔, 신체적 특징, 머리카락 색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그 모든 경험이 여행이라는 단어에 담긴다. 여행은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우연성’에 자신을 맡기고, 타 문화와 만났을 때 자신의 혀와 몸이 허용하는 다양성의 범위를 확인하고, 한국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집단 공유된 관성을 발견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때론 기쁘지만 때론 당혹스러운 이 경험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은 기꺼이 여행하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막연한 선입견이 발로 누비는 견문으로 수정되는 과정, 내게 익숙한 삶의 방식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아니며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방식을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는 게 여행이기에 이 칼럼을 쓰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단연코 ‘여행’이다. 앞으로 연재될 칼럼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나 또한 예측할 수 없다. 이 칼럼은 전적으로 여행의 기록이며, 여행에서 마주친 우연성의 기록이기에 편의상 글쓴이는 내 이름으로 표기되지만 보다 정확하게 이 칼럼의 제목은 ‘여행으로 쓴다’가 될 수밖에 없음을 밝히며 새 연재를 시작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2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