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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00) 이열치열 - 장석주의 ‘호박젓국’

푸레택 2022. 4. 23. 21:22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00) / 이열치열 - 장석주의 ‘호박젓국’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00) / 이열치열 - 장석주의 ‘호박젓국’ - 뉴스페이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00) / 이열치열 - 장석주의 ‘호박젓국’ 호박젓국장석주 윗집 태정이네 어머니가 애호박 두 덩이를 안고어둑어둑한 길 밟으며 내려와 놓고 간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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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00) 이열치열 - 장석주의 ‘호박젓국’

호박젓국 /
장석주


윗집 태정이네 어머니가 애호박 두 덩이를 안고
어둑어둑한 길 밟으며 내려와 놓고 간다
오늘 저녁엔 저걸로 호박젓국을 끓이자
싸락눈이 창호지 문을 싸락싸락 때리는 초겨울 저녁나절,
어머니는 쌀뜨물 받아 호박젓국을 끓이셨다
그 호박젓국이 어느덧 내 피와 뼈가 되었을 터다
썬 호박과 다진 마늘과 새우젓과 고춧가루들이 뒤엉켜
냄비 속에서 호박젓국이 끓는다
애호박이 제 속에 품은 향긋한 흙냄새와 
진국을 기어코 토해낸다
이 슴슴하고 간맞은 것들을 앞에 놓고 
뜨거운 밥 한 공기를 거뜬하게 비우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배 부르자 멀리 있는 늙은 어머니를 떠올린다

밤하늘엔 집 나온 별들이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
된똥 누는 미운 일곱 살짜리 아들 하나를 슬하에 거느리고
밤의 적요가 사방에 꽉 차 있다
일곱 살짜리 아들이라니,
가망 없는 희망이다!
오, 나는 적요의 문중이다, 새초롬한 앵두나무 두 그루와
어여쁜 시냇물 소리나 키우는 수밖에 없다
신흥사 저녁예불 알리는 범종 운 뒤
설악산 화채봉 능선 위로
지금쯤 보름 지난 둥근 달 불끈 떠올랐을 게다

― 『절벽』(세계사, 2007)

<해설>

  오늘이 대서다. 이런 날은 ‘아이고 덥다’를 연발하지 말고 뜨거운 음식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으면 오히려 개운해지고 더위도 가신다. 

  화자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초겨울 저녁나절에 쌀뜨물을 받아 새우젓 풀어 호박젓국을 끓어주셨나 보다. 젓국 만드는 조리법이 퍽도 상세하게 나와서 입에 군침이 절로 돈다. 그러나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 호박젓국의 삶은 멀어지고 말았다. 시인은 그저 새초롬한 앵두나무 두 그루와 어여쁜 시냇물 소리나 키울 수밖에 없다. “된똥 누는 미운 일곱 살짜리 아들 하나를 슬하에 거느리고/ 밤에 적요가 사방에 꽉 차 있는 적요”라는 표현은 백석의 경지다. 『시안』에 발표할 때는 산문시로 썼는데 시집으로 내면서 이렇게 고치니까 시가 훨씬 좋아졌다. 대가도 이렇게 퇴고를 하고 또 하나 보다. 

  어머니가 해주신 것을 먹는다는 것!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정경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해주신 것은 다 맛있었다. 내 어머니 돌아가신 지도 어언 12년 반. 돌아갈 수 없는 멍한 시간이여. 그때 그 음식이 먹고 싶어서 눈물짓는다.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23

/ 2022.04.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