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9) 복날에 죽는 개-정상현의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

푸레택 2022. 4. 23. 21:1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9) / 복날에 죽는 개 - 정상현의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9) / 복날에 죽는 개 - 정상현의 '도사견 축사를 지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9) / 복날에 죽는 개 - 정상현의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정상현 집에 가는 길목에 도사견 축사가 있다. 야생의 들개 같은 주둥...

www.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99) 복날에 죽는 개-정상현의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 /
정상현


집에 가는 길목에 도사견 축사가 있다
야생의 들개 같은 주둥이며
송아지만 한 몸집이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도사견들이
철조망 울타리 곁을 지날 때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으르렁거렸다
그때마다 오금이 저려오는 나는
놈들을 바로 응시하지도 못하고
슬슬 눈치 보며 지나쳐가고……
  
언제부터인가 그 도사견들이 
겁먹은 내 심장 속으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곤 했다
내 목덜미를 사납게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부들거리는 놈들의 주둥이를 보며
때론 나에게도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두근두근 일어서는 것들이……

오뉴월 불볕 아래 후덥지근한 날 
축사 옆 개똥 무더기에서 냄새가 지독하고
파리가 윙윙거리는 축사 여기저기
먹다 남은 밥그릇 옆에서 
거적처럼 축축 늘어진 도사견들
알고 보니 놈들은 복날의 보신탕으로 팔려가기 위해
그 사나움이 거세된 채 사육된다 한다

자기들의 운명을 다 눈치 채고 있는 걸까?
지나가는 사람 기척에도 놈들은
으르렁거리지도 노려보지도 않고 엎어져 있고
그저 똥개마냥 되야지새끼 마냥
개 팔자로 늘어져 있는 도사견 축사를 지나며
나는 이제 주먹만 한 짱돌을 하나씩 집어든다
놈들의 잠든 골통을 겨냥하여
돌을 던진다 세차게
세차게 던진다
  
― 『사라진 나라를 꿈꾸다』(모아드림, 2003)

 <해설>

  오늘이 중복, 전국적으로 어제 많은 개가 죽었을 것이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눈이 멀고 만 후배 정상현의 두 번째 시집에 실려 있는 시다. 눈이 멀기 전에 쓴 시다. 예전에, 중앙대 안성캠퍼스 후문으로 나가서 좀 걸어가다 보면 도사견 축사가 있었다. 복날 보신탕집에 팔려갈 개들이 사육되고 있는 것이다. 상현은 자취방에 가면서 멀찍이 보이는 축사의 개들이 불쌍해서 이 시를 썼다. 사나움조차 거세된 채 사육되고 있는 개들에게 정신 차리고 자아를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 한다. 자존심도 없이, 잡아먹히기 위해 살아가는 식용 도사견의 운명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깨어 있으라고 말해준다. 

  보신탕을 전에 너덧 번 먹었다. 안 먹은 지 20년이 넘었다. 나는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여름이면 보신탕으로 보신을 하였다. 이번 여름에 또 몇 마리의 개가 참혹하게 죽을까! 

  상현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친구와 얘기하며 도로를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식물인간의 상태로 몇 년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몸도 성치 못하고 시력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맹인용 컴퓨터 자판을 익혀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을 기다리고 있다. 과내 동아리 ‘작인’을 만든 상현에게 또다시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있다.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22

/ 2022.04.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