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7) 같은 길을 걸었다-마종기의 ‘길’ (2022.04.20)

푸레택 2022. 4. 20. 19:16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7) / 같은 길을 걸었다 - 마종기의 ‘길’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7) / 같은 길을 걸었다 - 마종기의 ‘길’ - 뉴스페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7) / 같은 길을 걸었다 - 마종기의 ‘길’ 길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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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7) 같은 길을 걸었다-마종기의 ‘길’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문학과지성사, 2002) 

  <해설>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간 마종기 시인은 환갑이 지나도록 이역만리에서 살았다. 태평양 저 너머에서, 고국에 있는 “같이 늙어 가는 사람”을 거듭해서 부르고 있다.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이라니 황동규인가 김영태인가. 친구란 인생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행인이다. 전화를 해도 되고 컴퓨터 이메일로도 소식을 전할 수 있지만 잔 물살들처럼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어야지 친교가 가능한 법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고, 이제는 저승으로 난 길을 제각기 걸어가고 있다.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는데,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이 열리는데, 너는 “이승을 지나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외따로 난 길을 가고 있다. 마지막 연은 젊은 날을 회상한 제3연과 대조를 이루어,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진다. 

  마종기 시인이 지금은 한국에 와 계시고, 미국에는 간간이 가는 걸로 알고 있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친구가 필요한 법이다. 우정이 좋은 것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평균율』을 냈던 3명 시인 가운데 김영태 시인이 2007년에 작고하였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10

/ 2022.04.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