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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6) 개미 같은 사람-김형식의 '개미에 대한 기억' (2022.04.20)

푸레택 2022. 4. 20. 19:07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6) / 개미 같은 사람-김형식의 '개미에 대한 기억'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6) / 개미 같은 사람-김형식의 '개미에 대한 기억' - 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6) / 개미 같은 사람-김형식의 '개미에 대한 기억' 개미에 대한 기억-구인광고판 앞에서김형식 벽돌 등짐 지고 일렬종대 경사진 철판 오르는 인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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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6) 개미 같은 사람-김형식의 '개미에 대한 기억' 

개미에 대한 기억-구인광고판 앞에서 / 김형식

벽돌 등짐 지고 일렬종대 경사진 철판 오르는 인부들 

폭염의 신축공사장 앞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골똘하다 
힐끔 보니 제 몸 몇 배의 벌레를 물고 부산한 개미떼를 작은 막대기로 헤집고 있다 

어린 시절 비 젖어 학교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아버지는 술 받아 오라 득달같이 성화를 부렸다 그 길로 비안개 속 헤매다 소름 돋은 몸 밤 깊어 슬며시 집에 들면 좁은 방안 코고는 소리 술 냄새가 온몸에 달려들었다 뒤척이다 들은 잠, 눈을 뜨면 쪽창으로 쏟아지던 맑은 햇살 아버지는 

없다. 부재가 남긴 평안 
몇 번인가 개미떼를 헤집던 나른한 기억 

가을 운동회 인간피라미드 매스게임, 가장 밑자리 등 받침 하던 나는, 아버지가 쓰러졌다 달려간 응급실 그 후 
오랫동안 길 위에 있어야 했다 

불현듯 일어난 아이가 개미떼를 짓이긴다 순식간 사방으로 
허리가 잘려 바동거리는 흙에 묻혀 허우적거리는 신발 밑바닥에 붙은 혹은 흔적조차 없는 
生, 황급히 앰뷸런스 빠져나가고 
아이 떠난 자리 다시 모여든 개미떼 부산하다 

내 앞엔 먼지 덮인 구인광고판 
땡볕 받아 히쭉 웃음 터뜨리듯 빛나고 있다 

-『내일을 여는 작가』(2001년 가을호)

<해설>

이 시의 일부는 사실일 것이다. 학교에서 비를 맞고 돌아온 아들에게 술 받아 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아버지, 개미 떼를 헤집던 나른한 기억, 가을 운동회 인간피라미드 매스게임의 가장 밑자리, 쓰러진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평안……. 이 가운데 몇 가지가 사실일까. 이 시의 뛰어남은 체험과 상상력의 교묘한 교차에 있지 않다. 우선 영화 촬영할 때 쓰는 오버랩이나 몽타주 같은 기법을 잘 활용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살렸다. 편집 기술과 원근법도 적절히 쓰고 있고,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한 기법도 신선하다. “매스게임, 가장 밑자리 등 받침 하던 나는, 아버지가 쓰러졌다 달려간 응급실 그 후” 같은 대목은 절묘하다. 

개미떼를 헤집고 놀던 어린 시절의 나와 폭염의 신축공사장 앞에서 개미 떼를 죽이는 한 아이와의 대비도 좋지만, “벽돌 등짐 지고 일렬종대 경사진 철판 오르는 인부들”과 “아이 떠난 자리 다시 모여든 개미떼 부산하다”와의 대비는 더욱 좋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09

/ 2022.04.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