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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5) 어머니의 오르가슴-김선우의 ‘아욱국’ (2022.04.20)

푸레택 2022. 4. 20. 19:0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5) / 어머니의 오르가슴 - 김선우의 ‘아욱국’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5) / 어머니의 오르가슴 - 김선우의 ‘아욱국’ -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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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5) 어머니의 오르가슴-김선우의 ‘아욱국’

  아욱국 / 김선우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 
  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 
  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엄마, 오르가슴 느껴본 적 있어? 
  -오, 가슴이 뭐냐? 
  아욱을 빨다가 내 가슴이 활짝 벌어진다 
  언제부터 아욱을 씨 뿌려 길러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으응, 그거! 그, 오, 가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으로 웃으시고 

  나는 아욱을 빠네 
  시푸르게 넓적한 풀밭 같은 풀잎을 
  생으로나 그저 데쳐 먹는 게 아니라 
  이남박에 퍽퍽 치대어 빨아 
  국 끓여 먹을 줄 안 최초의 손을 생각하네 
  그 손이 짚어준 저녁의 이마에 
  가난과 슬픔의 신열이 있었다면 
  그보다 더 멀리 간 뻘밭까지를 들쳐 업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푸르른 관능의 힘, 
  사랑이 아니라면 오늘이 어떻게 목숨의 벽을 넘겠나 
  치대지는 아욱 풀잎 온몸으로 푸른 거품 
  끓이는 걸 바라보네 

  치댈수록 깊어지는 
  이글거리는 풀잎의 뼈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고 
  슬픔이 커서 등이 넓어진 내 연인과 
  어린것들 불러 모아 살진 살점 떠먹이는 
  아욱국 끓는 저녁이네 오, 가슴 환한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

<해설>
  
화자는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그 언젠가, 자기 어머니한테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던 일을 기억해낸다.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인 어머니는 “으응, 그거! 그, 오, 가슴!” 하며 제대로 대답을 못하다가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빛 얼굴로 웃는다. 시푸른 아욱의 육즙은 건강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생명체는 생명력이 가장 왕성할 때 씨를 퍼뜨리는 법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이 밤에는 화자가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가득한 풀밭”을 차린다. 

슬픔이 크다고 한 이유가 나타나 있지 않지만 화자는 내 연인과 어린것들을 불러 모아 살진 살점도 떠먹인다. 시푸른 관능의 힘이란 먹는 데서 나오는 것일 테고, 오르가슴의 힘도 먹는 데서 나오는 것일 터. 세상의 어미가 반드시 해야 될 일은 자식이 잘 자라도록 밥을 먹이는 일이다. 세상의 부부가 해야 할 일은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는” 것일 테고. 출산율이 최악이고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이것이 드리운 그림자가 아주 짙다고 한다. 초등학교 폐교가 늘고 있는데 이제는 대학도 그렇게 된다고 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08

/ 2022.04.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