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3)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김나비의 '로봇청소기' (2022.04.20)

푸레택 2022. 4. 20. 18:5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3)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김나비의 '로봇청소기' 

로봇청소기 /
 김나비 


예약된 또 하루가 조용히 눈을 뜬다 
친구가 없는 나는 은둔형 외톨이 
사람들 떠난 냄새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간단한 질문에는 표정 없이 답을 하고
사지를 웅크린 채 어제를 찾아가며
먹어도 자라지 않는 바코드를 읽는다
  
분주한 발소리가 문밖에 흩어지면
내 속에 숨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남들은 내 머릿속을 먼지통에 빗댄다
  
혼놀*은 나의 운명, 새겨진 검은 루틴
익숙한 외로움이 틀 안에 맴을 돌 때
재빨리 몸을 숨기고 충전대로 향한다

*혼놀: 혼자서 놂. 또는 그렇게 하는 놀이. 

-『계간문예』(2019년 여름호)
 

<해설>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도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 흔히 ‘방콕족’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살아간다. 부모가 돌봐주면 의식주 해결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노숙자가 되거나 행려병자가 된다. 일본에서는 로봇 개발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도 뒤쫓아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덕에 로봇청소기가 제법 일을 할 줄 아는 단계가 되었다. 이 시조에서 은둔형 외톨이는 로봇청소기다. 주인이 명하는 대로 하지만 인공지능이 장착되어 숨어 있다가도 때가 되면 충전대로 가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혼놀’이 나의 운명이라고 하는 은둔형 외톨이에게 꼬리를 흔드는 것이 로봇청소기인가?

독신자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집이 나날이 늘고 있다. 요즈음은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견이다. 인간이 인간과 살아야 아기도 낳을 텐데…. 인간의 임종을 지키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강아지나 고양이가 되었고 이제는 로봇강아지인가? 김나비 시조시인이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화를 잘 그렸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06

/ 2022.04.2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