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9) / 뜨신 오줌을 누다 - 문인수의 '쉬'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89) 뜨신 오줌을 누다-문인수의 '쉬'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비끄러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작가세계』(2002년 겨울호)
<해설>
시의 전반부는 상가에 가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고 후반부가 그야말로 시다.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것은 쉼표다. 몸이 몸을 낳는 법, 지인인 ‘그’는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누이려 하고,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는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를 쓴다. 눈물겨운 장면이다. “툭, 툭, 끊기는 오줌발”은 현상이고, “그 길고 긴 뜨신 끈”은 부자지간이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다. 그 끈을 아들은 땅에 비끄러매려 한다. 즉, 돌봐드리고 더 오래 사시게 하려 애쓰고, 아버지는 그 끈을 힘겹게 마저 풀려고 한다. 이젠 그만 죽어 아들의 수고를 들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란 아들의 말은 시의 마지막 행과 연결이 되고 제목과도 연결이 된다. 그래서 꽉 짜인 시가 되었다. 문인수 시인이 편찮다고 한다. 쾌유를 기원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12
/ 2022.04.20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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