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산책] 귀룽나무, 꽃단풍, 돌단풍
/ 2022.04.02(토) 홍릉수목원에서 촬영
■ 귀룽나무와 진달래 / 김동호
아직도 깊은 겨울인양
흑갈색 나목이 빼곡히 하늘을 막고 있는 숲속에서
문득 녹색의 횃불을 보면
놀라지 않을 자 있을까
겹겹이 둘러싼 흑갈색 장대 벽을
봄은 어떻게 뚫고 들어왔을까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떤 속삭임
어떤 암호를 따라 들어왔을까
귀룽나무는 또 어떻게 그 소식을
은밀히 받아 푸른 횃불 들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나 딱! 손뼉을 친다
그렇다. 수놈 까치 있는 곳엔
암놈 까치 어디쯤 늘 있었다
귀룽나무 푸른 불 마중 나온 빨간 불의
어떤 꽃, 이 근처에 틀림없이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등성이 저쪽, 바위 병풍 뒤에
빨간 촛불 든 진달래 이미 와 있지 않은가
■ 귀룽나무 / 윤은경
양묘장 구석 귀룽나무는 올해도 넘치게 꽃을 달았다
쟁강쟁강 매달린 흰 꽃들은 지칠 줄 모르고 한 그루 나무를 세상의 중심으로 옮겨 놓는다
그대가 내게 와 넘치게 달아주었던 때처럼
꽃이 핀다는 건 삶의 끄트머리에 간절함을 매다는 것
그대가, 그러나 내게서 떨어져 시드는 것처럼
꽃잎들 무수히 흩날린다
저 몸의 낭떠러지 앞에서
한 생애가 붙잡은 버거운 슬픔의 부피 앞에서
나무는 말이 없고 나 또한 말이 없다
귀룽나무 꽃더미는 누렇고 칙칙하고 한 송이 꽃 같은 간절한 나의 인연은 뒤섞이고,
두려움도 없이 서두는 법도 없이 가벼운 육체는 다른 세상의 둥근 무거운 문을 열어놓고
내민 손을 내게서 거두듯
아주 천천히
세상의 중심에서 소리를 거두어 가고 있다
- 《문학마당》 (2007, 여름호)
■ 과수원 시집 / 배한봉
봄 과수원에
파릇파릇 돋는 저것은 풀이 아니다
노랗게 발갛게 피는 저것은 꽃이 아니다
바람에게 물어봐라
햇빛에게 물어봐라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과수원 언저리를 온통 노랑물살 지게 하는 저 유채꽃에 대해
산비둘기가 나뭇가지에 두고 간 울음
그 여운 끝자락을 붙잡고 화들짝 꽃봉오리 여는 홍매에 대해
지난 겨울의 눈바람을 먹고
열병처럼 퍼지는 가뭄을 먹으며
온몸으로 대지가 쓰는 시, 나무가 쓰는 시
뻐꾹새에게 물어봐라
벌, 나비에게 물어봐라
저 시 없다면 누가 봄이라 하겠나
저 시집 한 권 읽지 않고 어떻게 봄을 말할 수 있겠나
별과 달이 밤새도록 읽다 펼쳐둔
과수원 시집
나는 거름 져다 나르며 읽고
앞산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
[봄꽃산책] (1) 홍매.. 홍릉수목원 (2022.04.02)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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