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산책] 진달래, 개나리, 히어리
/ 2022.04.02(토) 홍릉수목원에서 촬영
■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진달래 / 이해인 (수녀)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 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 진달래와 아이들 / 박희진
지금은 없어진 이 땅의 보릿고개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았다는
밑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위로 연명했죠
허기진 아이들은 산에 들에 만발한
진달래 따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다르데요
어제 숲 속의 샘터로 가는데,
두 아이가 진달래 꽃가지를
흙을 파고 정성껏 심는 것을 보았어요
물론 그들이 꺾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꺾어서 버린 걸 말예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그 진달래는 내 가슴속에도 심어졌다는 것을
■ 진달래 능선에서 / 이계윤
진달래 한 송이 지게에 달고
꽃 같은 마음이라야 하느니라 하시던
아버지 그 말씀......
아버지 생전에
지게발통 작대기 장단에
한을 노래 삼아 콧노래 부르시더니
저승 가시는 길에
가난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배움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허리 굽은 능선에 빨갛게
꽃으로 서 계시는 당신
오늘도
진달래 불타는 산 허리춤에
꽃가슴 활짝 열고 계시군요
생시처럼
아버지!
당신 계시는 음택(陰宅)
진달래 타는 불꽃에
가슴이 아려
꽃잎에 이슬이 내립니다
■ 진달래와 어머니 / 설태수
진달래 숲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는
배고프던 옛날에 진달래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진달래 한 송이를 맛보시면서
앞산 진달래를 꺾어 와 부엌 벽 틈마다 꽂아두면,
컴컴하던 부엌이 환했다고 하신다
진달래 맛이 옛맛 그대로라고 하신다
얼핏 어머니의 눈빛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계셨다
처녀 적 땋아 내린 긴 머리 여기저기에
진달래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빨간 풍선처럼 이 산 저 산을 마구 떠다니시는 듯했다
(어머니, 너무 멀리 가지 마셔요)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산에 피는 꽃이나 사람꽃이나 사람 홀리긴
매한가지라시며,
춘천을 오갈 때는 기차를 타라고 하신다
일주일에 내가 이틀씩 다니는 경춘가도의
꽃길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이 제겐 詩로 들리네요
하니깐, 진달래 숲길에서 어머닌
진달래꽃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 2022.04.02(토)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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