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 / 석가탄신일에 읽다 - 조지훈의 '고사 1'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 석가탄신일에 읽다 - 조지훈의 '고사 1'
고사(古寺) 1 / 조지훈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풀잎 단장』(창조사, 1952)
<해설>
오늘은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이다. 전국의 사찰에서 봉축법회가 열리고 연등에 불을 밝히리라. 많은 불자들이 석가의 탄생을 기뻐하고 각자 소망을 기원하리라. 이 시에는 석가가 불교를 창시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일요일은 동시를 올리는 날인데 이 시는 동시 같기도 하다.
오래된 절이기도 하고 낡은 절이기도 하다. 상좌아이가 대웅전 대불 앞에서 목어를 두드리며 경을 외우다 잠이 들었다. 뜻도 모르고 하는 염불이니 얼마나 지루할까. 대웅전의 불상은 하나의 상(혹은 상징물)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의인화시킨다. 스르르 드러눕더니 잠이 든 상좌아이를 보고 부처님은 웃는다.
이 시에서 서역은 원래의 뜻과 달리 쓰였다. 서역은 중국 한대 이후 국경지대에 있는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 서쪽의 여러 나라들을 일컫던 역사적 용어다. 한의 무제는 장건을 파견하여 처음으로 서역을 개척했고, 선제는 서역도호부를 설치했다. 시에서 서역은 석가가 살았던 아주 먼 곳이다. 만리 저쪽 먼 곳에서 이 땅에까지 전래된 것이 불교다. 왕자의 신분으로 한 인간이 태어나 풍족하게 살다가 인간 생로병사의 비의를 알아보고자 출가해 고행을 하였다. 고행을 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자 참선에 들어갔고 어느 날 새벽에 별을 보며 깨달음을 얻곤 설법을 시작, 불교가 성립되었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모란이다. 모란은 붉고 화려한 꽃잎이 부귀영화를 나타낸다. 전통 혼례복이나 신방의 병풍에 모란은 빠지지 않았다.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불교가 자비와 보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지 덧없음을 극복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석가탄신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야 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5.12
/ 2022.03.2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