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 / 고향을 노래한 시인 - 정완영의 '고향 생각'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 고향을 노래한 시인 - 정완영의 '고향 생각'
고향 생각 / 정완영
쓰르라미 매운 울음이 다 흘러간 극락산 위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지금도 등 뒤에 걸려 사윌 줄을 모르네
동구 밖 키 큰 장성 십리 벌을 다스리고
풀수풀 깊은 골에 시절 잃은 물레방아
추풍령 드리운 낙조에 한 폭 그림이던 곳
소년은 풀빛을 끌고 세월 속을 갔건마는
버들피리 언덕 위에 두고 온 마음 하나
올해도 차마 못 잊어 봄을 울고 가더란다
오솔길 갑사댕기 서러워도 달이 뜨네
꽃가마 울고 넘은 서낭당 제 철이면
생각다 생각다 못해 물이 들던 도라지꽃
가난도 길이 들면 양처럼 어질더라
어머님 곱게 나순 물레 줄에 피가 감겨
청산 속 감감히 묻혀 등불처럼 가신 사랑
뿌리고 거두어도 가시잖는 억만 시름
고래등같은 집도 다락같은 소도 없이
아버님 탄식을 위해 먼 들녘은 비었더라
빙그르 돌고 보면 인생은 회전목마
한 목청 뻐꾸기에 고개 돌린 외 사슴아
내 죽어 내 묻힐 땅이 구름밖에 저문다.
<해설>
올해는 정완영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5월 2일, 대산문화재단에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제’가 열렸는데 발제를 시조시인 이지엽 경기대 교수가 했다. 이제는 정완영의 시조가 학문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경북 금릉군 봉산면 예지동(1994년에 금릉군이 김천시에 편입)에서 태어나 2016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빈소가 서울 성모병원에 마련되었을 때 가서 조문했음은 물론이다. 내 고향이 김천이며 생시에 여러 차례 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이육사문학상 예심을 보았는데 마침 그 전해인 2001년에 『이승의 등불』이라는 시조집이 나왔기에 본심에 올렸더니 수상을 하셨다.
소도시 김천을 금릉군이 뺑 둘러싸고 있었는데 참 가난했던 곳이다. 산업시설은 전무했고 다들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평야지대가 아니다. 척박한 땅에 고작 심어야 과실나무다. 추풍령 아랫마을인 봉산면 사람들의 궁핍한 삶이 시에 펼쳐져 있다. 가난을 길들이고 살았다고 하면서도 이상하게 작품이 전반적으로 아프다. 특히 어머니가 등장하는 제5연과 아버지가 등장하는 제6연에 이르면 설움이 복받친다. 물레를 돌리고 밭일을 하던 두 분도 다 돌아가시고 이제 시인은 자신의 임종을 생각한다. “내 죽어 내 묻힐 땅”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지금 김천 백수문학관 뒷산의 나무 아래 잠들어 있다. 내가 자라난 고향에 정완영이라는 큰 시인이 태어나 시조문학을 일으키고(1947년 동인지 『오동』 창간), 시조문단을 이끌고(영남시조문학회 창립,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ㆍ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 본인은 우뚝 섰으니 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5.11
/ 2022.03.2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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