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 / 슬픈 생존본능 - 김윤배의 ‘가마우지를 위한 노래’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 / 슬픈 생존본능 - 김윤배의 ‘가마우지를 위한 노래’
가마우지를 위한 노래 / 김윤배
누가 너를 괴롭히느냐
너의 주인이, 그 탐욕의
말들이 너를 괴롭히느냐
이강에서의 한때를 말하며
나는 가마우지에게 묻는다
가마우지는 긴 목 움츠리고
이강 본다 불의의 일격이 숨어 있는
조용한 물길 속을 유영하는
힘찬 가슴지느러미를,
한순간 절망을 향해 크게 선회할
꼬리지느러미의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물끄러미 보며 강물 속에서
물어 올린 것은 헛된 식욕임을 깨닫는다
가마우지는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하루의 노역을 꺽꺽이다 부리를 벌린다
이강의 어부는 가마우지 목에서 물고기를 꺼낸다
물고기의 눈부신 비늘이 슬픔처럼 반짝인다
한때는 심해를 흐르던 물길이었을
이강을, 이강의 가마우지를 말하며
이제는 나에게 묻노니
너의 목숨이 너를 괴롭히느냐
―『부론에서 길을 잃다』(문학과지성사, 2001)
<해설>
이강(離江)은 중국 계림시에 있는 강 이름이다. 이강에서 행하는, 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법이 독특해서 텔레비전에도 몇 번 소개된 바 있다. 가마우지 목을 올가미로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 후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가로채는 낚시법이다. 가마우지 낚시에서 중요한 것이 먹이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만 주는 것인데, 너무 자주 많이 주면 가마우지가 배가 불러 사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먹이를 주는 시간과 양을 지키는 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가마우지는 어부가 규칙적으로 먹이를 주기 때문에 굳이 도망갈 생각을 하지도 않고, 열심히 사냥을 하며 어부를 따른다. 불쌍한 가마우지들.
시인은 그 프로그램을 보고 그 참 재미있는 낚시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선을 보면 잡아먹는 것이 가마우지의 본성인데, 그 본성을 이용해 인간이 생선을 갈취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이 낚시는 일종의 사기행각이며 동물학대다. 시인은 가마우지의 생존본능이 얼마나 슬픈 본능인지, 독자에게 들려준다.
허기를 느껴 물고기를 입으로 꿀꺽 삼켰는데 그것이 배로 들어가지 않고 목에 걸리게끔 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잔인한 것인가 지혜로운 것인가.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보고서 형식으로 쓰지 않고 시인은 자신에게 묻고 있다. 아니, 우리한테 묻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묻노니// 너의 목숨이 너를 괴롭히느냐”고. 그렇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도 우리네 인간의 끈질긴 생존본능 혹은 생명력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5.14
/ 2022.03.2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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