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삶의 지혜

[남산 딸깍발이] 러시아의 침공, 우크라이나는 어떤 국가인가 (2022.03.24)

푸레택 2022. 3. 24. 11:23

[남산 딸깍발이] 러시아의 침공, 우크라이나는 어떤 국가인가 (daum.net)

 

[남산 딸깍발이] 러시아의 침공, 우크라이나는 어떤 국가인가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차이콥스키 선조의 터전이자, 그 역시 여름마다 별장에 머물면서 지역 민요를 바탕으로 ‘안단테 칸타빌레’ 등 다수의 명곡을 작곡한 곳. 문학의 대가 도스토옙스키

news.v.daum.net

[남산 딸깍발이] 러시아의 침공, 우크라이나는 어떤 국가인가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차이콥스키 선조의 터전이자, 그 역시 여름마다 별장에 머물면서 지역 민요를 바탕으로 ‘안단테 칸타빌레’ 등 다수의 명곡을 작곡한 곳. 문학의 대가 도스토옙스키 선조의 고향.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모국. 바로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고유의 역사와 문화, 과학기술을 보유한 엄연한 독립국가다. 러시아를 빼고 유럽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최대의 곡창지대로 잘 알려져 있다. 경지 면적은 일본의 총면적에 이르고, 농업국 프랑스 경지 면적의 두 배나 된다. 21세기 세계적 식량 위기가 일어난다면 그 위기에서 구해줄 나라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가 꼽힐 정도다. 과학기술도 상당하다. SS-19, SS-21 같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만들어졌다. 예술, 문화, 스포츠 분야의 수준도 상당하다. 음악가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발레 무용수로 바츨라프 니진스키, 아방가르드 회화 창시자인 카지미르 말레비치, 장대높이뛰기 선수 세르게이 부브카, 피겨스케이팅 선수 옥사나 바울 등이 모두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우크라이나가 국가 탄생의 기원으로 삼는 키이우(키예프) 루스 공국의 역사서 ‘원초 연대기’에 따르면 키이우 주변에 동슬라브인 폴라네 씨족이 살고 있었다. 그중 맏형 키이, 쉬첵, 호리브 삼형제와 누이동생 리비드가 도시를 만들었는데, 이름은 맏형 이름을 따서 키이우라고 지었다.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의 시작이다.

현재 누가 키이우 루스 공국의 계승국인지를 두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 논쟁이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15세기만 해도 키이우루스 공국의 지배 아래 있는 비슬라브 부족체의 연합체일 뿐이었다.

역사가 오마셰프스키는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 90%가 거주하는 지역을 지배했던 할리치나-볼린 공국을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1340년대에 볼린과 할리치나는 각각 리투아니아, 폴란드에 병합됨으로써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는 소멸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세 민족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로 분화됐고 언어도 제각기 사용했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1876년 엠스 칙령에 따라 우크라이나어 서적의 수입 전면 금지, 강연에서 우크라이나어 사용 금지, 우크라이나어 신문의 발행 금지, 초등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로 교육 금지, 학교 도서관에서 우크라이나어 서적 추방, 우크라이나 관련 단체의 폐쇄, 우크라이나 운동 활동가의 추방 등 상당히 철저한 민족 탄압을 겪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의 지배를 거쳤다. 1차 세계대전까지 120년간 우크라이나 영토는 80%가 러시아 제국, 20%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지배된다.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면서 우크라이나는 70여년간 연방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던 중 발발한 2차 세계대전에서 우크라이나는 인구의 6분의 1인 530만명을 잃는다. 이 시기 소련 전체의 물질적 손해 중 40%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폴란드 각각이 입은 것보다 더 큰 규모였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난 건 1990년. 8월18일 발생한 쿠데타를 기점으로 소비에트 연방을 유지하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힘을 잃고 보리스 옐친이 힘을 얻으면서 8월24일 우크라이나 최고 회의는 독립을 선포한다. 많은 우크라이나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던 캐나다는 신속히 독립을 승인했고, 미국 역시 12월24일 승인했다. 현재 미국에는 150만명, 캐나다에는 100만명의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독립 4년 전인 1986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쪽 체르노빌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했는데, 당시 소련의 무책임한 대응이 우크라이나의 반(反) 소련 분위기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History of the Ukraine(우크라이나의 역사)’란 표현을 두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의견이 갈린다. 우크라이나는 본래 ‘변경지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당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변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소련)사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며 최근에는 보통명사인 ‘땅’ ‘나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관사 유무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면서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the Ukraine’가 아닌 그냥 ‘Ukraine’로 불러달라고 외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이 책은 쟁점으로 떠오른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해도를 높이고,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글항아리 이은혜 편집장은 "국내 출간서 중 빠진 나라들을 찾다가 우크라이나 역사서를 준비하게 됐다. 독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면서 관심도가 높다"며 "교보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현재까지 3쇄를 찍었다"고 전했다.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구로카와 유지 지음 | 안선주 옮김 | 글항아리 | 296쪽 | 1만6000원


글=서믿음 기자ㅣ아시아경제 2022.03.04

/ 2022.03.2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