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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 뇌과학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 착한 이유 (2022.03.24)

푸레택 2022. 3. 24. 11:26

[남산 딸깍발이] 뇌과학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 착한 이유 (daum.net)

 

[남산 딸깍발이] 뇌과학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 착한 이유

2000년 한 소아기호증 환자가 아동 포르노를 수집하고 의붓딸을 성추행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해 검사를 받은 결과,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커다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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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 뇌과학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 착한 이유 

2000년 한 소아기호증 환자가 아동 포르노를 수집하고 의붓딸을 성추행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해 검사를 받은 결과,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커다란 암세포가 발견됐다. 놀라운 건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고 난 이후 그의 소아기호 증세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다만 몇 개월 뒤 다시 아동 포르노 수집 증세를 보였는데, 뇌를 재검사한 결과 제거했던 암세포가 다시 자라나 있었다. 뇌의 특수 부위가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다.

책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의 저자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해당 사건을 뇌(복내측 전전두피질)와 도덕적 판단 간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신경윤리학의 하나로 소개한다. 잘 알려진 ‘트롤리 딜레마’의 일환이다. 이는 한쪽에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트롤리의 방향을 조정해야 하는데, 한쪽 선로엔 다섯명의 인부가 있고, 다른 쪽에는 한명의 인부가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한명의 희생을 선택하는 건 당연지사. 다만 선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고의로 밀어 트롤리를 멈춰야 하는 선택지에는 대다수가 난색을 표했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만이 망설임 없이 다섯명을 구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 정상적인 뇌를 지닌 사람이 이타주의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손상된 사람은 미묘하게 변화하는 요인들을 고려해서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하는 데 심각한 결함을 보인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저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불륜 경험이나 성적 일탈 경험을 털어놓는 등 지나치게 솔직한 행동을 보였다. 또한 상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등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선 넘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

저자에 따르면 정상적인 뇌는 일차적 보상보다는 이차적 보상에 더 끌린다. 음식이 일차적 보상이라면 돈은 이차적 보상이다. 음식이 포만감을 줄 수 있지만, 돈은 음식을 포함한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기통제력이다. 자기통제력이 없다면 일차적 보상에 치중해 중독에 빠지는 한치 앞만 볼 수 있다. 다만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진다면 현명한 결정(이타주의)을 내릴 수 있다. 바른 판단력을 지녀야 할 이유다. 저자는 “뇌는 일차적 보상보다 이차적 보상에 더 끌린다. 이러한 경향은 당연한 것이며, 장기적으로 볼 때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유리한 선택”이라며 “우리 인간은 대체로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 서서히 일차적 보상에서 이차적 보상으로 관심을 옮기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평판 본능에서 이타주의의 원인을 도출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에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따라 이타주의가 실현된다는 것. 실제로 한 실험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자신보다 높이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그 반대를 부정적으로 여겼다. 이타주의가 나를 낮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낫게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친구를 다른 이에게 소개할 때 긍정적인 측면은 강조하고 부정적인 측면은 피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평판을 높이는 데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타적 행동은 그 이면에 주어지는 보상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아라비안 배블러라는 새들 중 가장 높은 나무에서 포식자의 접근을 알리는 수고로움을 감수한 새가 무리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이타주의는 상대에게 호감을 얻기 쉽고, 이를 통해 추가적인 이득을 취하기 쉽다는 결론이다. 다만 저자는 일본의 한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이수현씨를 거론하며 과연 1초도 안 되는 동안 그러한 실익을 고려할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런 실익 판단이 판단을 불필요할 만큼 체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책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주장은 이타주의가 남을 위한 것 이전에 자신을 위한 것이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배고픔이나 통증을 해소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나 쾌감과 관련한 곳이라는 점에서 강한 내적 보상을 제공하거나, 좋은 평판을 통해 외적 보상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각가지 예시와 함께 전개되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롭다. 이타주의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친절하게 제공한다. 다만 난해한 개념을 풀어내 글이 술술 읽히게 하는 데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304쪽 | 1만7000원

글=서믿음 기자ㅣ아시아경제 2022.02.23


/ 2022.03.2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