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왔다, 꽃들은 초비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안충기의 삽질일기] 장마가 왔다, 꽃들은 초비상
“손님은 많지 않아요. 그래도 즐거워요. 문 열고 들어오시는 손님들 얼굴이 다들 꽃처럼 밝아서요. 화나서 오시는 분은 한 명도 못 봤거든요. 그러니 매일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지요.”
동네골목에 있는 작은 꽃가게에 꽃다발을 주문하며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인 얼굴도 꽃처럼 화사했다. 꽃은 자연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내 밭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쉼 없이 꽃이 피고 진다. 치자 꽃망울 벌어지기 시작하면 장마가 바다를 건너온다. 능소화나 수국도 이즈음 핀다. 봄채소들은 철수준비를 하느라 초비상이다. 앞다퉈 꽃대를 올리며 벌, 나비를 부른다. 바통은 곧 열매채소에게 넘어간다. 초록 바다 위에 떠있는 오색의 점, 내 밭 주위에서 피고 지는 꽃들은 이렇다.
접시꽃
1 꽃등에는 제 몸에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도 다시 접시꽃으로 날아든다. 얼핏 보면 꿀벌과 비슷하지만 요놈은 파리 가문이다.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꿀벌 패션으로 진화했다. 꿀벌은 날개가 2쌍이고 필살기 독침이 있다. 꽃등에는 날개가 1쌍이고 침이 없다.
제라늄
2 옆 밭을 밝히는 제라늄. 쥔장은 심성 고운 분일 테다.
고수
3 중국음식에 많이 쓰이는 고수. 씨를 제 발 아래 떨구고 가을이면 다시 싹을 틔운다.
미국자리공
4 박멸해야 할 귀화식물로 찍힌 미국자리공. 어디선가 씨가 날아와 뿌리를 내렸을 뿐이다. 식물은 죄가 없고 사람은 풀을 이길 수 없다.
애플민트
5 애플민트. 곳곳에서 허브가 자란다. 쥔장의 기호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괭이밥
6 괭이밥꽃은 노랗다. 잎 모양은 토끼풀과 4촌인데 꽃은 남남이다.
적겨자채
7 적겨자채. 쌀알처럼 붙은 꽃망울이 폭죽처럼 터진다.
쇠비름
8 도톰한 잎 사이로 고개를 내민 쇠비름 꽃.
토마토
9 하늘 향해 날아오른 토마토. 뜨거울수록 기가 산다.
감자
10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장마 전이 캐낼 때다.
냉이
11 냉이는 이른 봄에 피는 꽃 중의 하나.
주름잎
12 이슬 옷 입은 주름잎꽃. 새벽에나 볼 수 있다.
민들레
13 민들레는 홀씨(포자)가 아닌 씨앗(종자)으로 번식한다.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박미경이 ‘민들레 홀씨 되어’를 불러 널리 알려진 뒤 ‘씨앗’이 ‘홀씨’로 둔갑하는 일이 많다.
가지
14 가지꽃은 땅을 향해 핀다. 내 몸을 바짝 낮춰야 볼 수 있다.
개망초
15 계란꽃이라는 별명이 더 어울리는 개망초.
별꽃
16 내 밭을 덮다시피 한 별꽃.
바위취
17 물기를 좋아해 샘가에 무리지어 자라는 바위취.
방풍
18 쌈거리나 나물로 으뜸인 방풍. 주먹밥 모양 꽃이 여러 갈래로 달린다.
오이
19 오이꽃. 일하다가 목마르면 오이 하나 따서 우적우적.
메꽃
20 메꽃은 나팔꽃과 닮았지만 색깔이 옅다.
한련
21 화단의 단골 한련을 밭에서 보다니.
바질
22 피자 토핑으로도 쓰이는 바질도 만나고.
컴프리
23 우악스런 잎과 달리 꽃은 다소곳한 컴프리.
쑥갓
24 쑥갓꽃이 피면 연두색 줄기는 빛 바랜다.
20일무
25 뽑아버릴까 하다가 꽃 보려 놔둔 20일무.
개양귀비
26 고고한 개양귀비. 그래도 양귀비의 현란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본디보다 못한 동물이나 식물 앞에 ‘개’자를 붙인다. 개볼락·개상어·개나리·개지네·개동백·개머루·개머위·개승마·개싸리…
장미
27 뭐니 뭐니 해도 여름은 그저 장미.
호박
28 호박꽃도 꽃이다. 한번 보면 쏙 빠진다.
그림·사진·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ㅣ중앙일보 2019.06.29
/ 2022.03.22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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