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 한국적인 시의 전형 - 김억의 '오다 가다' (2022.03.21)

푸레택 2022. 3. 21. 14:5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 / 한국적인 시의 전형 - 김억의 '오다 가다'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 / 한국적인 시의 전형 - 김억의 '오다 가다' - 뉴스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 / 한국적인 시의 전형 - 김억의 '오다 가다' 오다 가다김억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예고 말 건가. 산에는 청청(靑靑)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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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 / 한국적인 시의 전형 - 김억의 '오다 가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 / 한국적인 시의 전형 - 김억의 '오다 가다'

오다 가다 / 김억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예고 말 건가

산에는 청청(靑靑) 
풀잎사귀 푸르고 
해수(海水)는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을 노래하고 
바다엔 흰 돛 
옛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리포구 산 넘어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에 논다

수로천리(水路千里) 먼 길을 
왜 온 줄 아나? 
옛날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 『안서시집』(1928)

<해설>

장장 90년 전의 시다. 김억은 일본 게이오[慶應]의숙 영문과에서 공부하면서 일본어로 번역된 프랑스시를 접했다. 귀국한 이후 『태서문예신보』『창조』『폐허』에 프랑스시를 열심히 번역해 실었다. 1921년에 낸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에는 84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베를렌의 시가 21편, 구르몽의 시가 10편, 사맹의 시가 8편, 보들레르의 시가 7편 실려 있다. 1923년에는 최초의 개인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발간하는데, 프랑스 시인들에게 영향 받는 바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그는 민요조 서정시를 쓴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소월을 발굴해 시인으로 인도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영향을 받은 것과 민요조 서정시를 쓴 시인과는 잘 맞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 오다 가다 만난 사람이라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하물며 내가 첫눈에 반했던 사람이라면! 오다 가다 만난 사람을 못 잊어 불원천리 찾아간 우정(혹은 애정)을 다룬 이 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다정다감’을 민요로조 읊조린 아름다운 작품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이 인연이다.

외국시의 영향을 애써 뿌리치고 한국적인 시를 쓰기 위해 애쓴 시인으로 김억과 소월 외에도 김영랑, 정지용, 김동환, 이상화, 서정주 등을 들 수 있다. 시조시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민요 혹은 우리의 가락을 의식했었기에 한국시의 품격을 드높이는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