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포스트휴먼 시대, 시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을 담은 아직 오지 않은 시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인터뷰] 포스트휴먼 시대, 시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을 담은 ‘아직 오지 않은 시’
“나는 내 세대 최고의 영혼들이 광기로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허기와 신경증으로 헐벗은 채”
앨런 긴즈버그, <울부짖음(Howl)> 중.
피로 얼룩진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인류는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천수만의 젊은 생명들이 참호 속에서 허망하게 사라져가는 현실을 마주하자, 인간을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이성’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근대의 이성과 합리성이 쌓아 올린 질서와 규범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폐허 속에서, 시인 긴즈버그는 말을 잃고 한 마리의 동물처럼 그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성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우리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지금,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오지 않은 시>의 저자들은,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에서 예심을 통과하는 현재의 포스트휴먼 시대에서, 인간이 쓰는 시의 방향성을 고민한다.
시를 읽고 연구해 온 여섯 명의 시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출간한 <아직 오지 않은 시-포스트휴먼 시대 시의 미래>는 지금의 현실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는 시 담론 연구서가 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졌다. 1부는 ‘인공지능, 포스트휴먼, 그리고 시’, 2부는 ‘포스트휴먼 시대 시의 변화’, 3부는 ‘플랫폼의 변화와 미래의 독자’이다. 특히 3부는 부지런하게 문학계의 현장을 돌아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다소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는 별개로, 문단 내 성폭력 운동으로 시작된 문단의 변화와 이후 있던 문예지 사유화와 폐간 권력 논쟁 독립문예지들의 등장과 사라짐까지 차근차근 짚어 나가는 이 연구서는 꼼꼼히 살펴본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본다.
사회에서 문학계의 위치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다. 2016년에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으로 큰 혼란을 겪기도 했고, 최근에는 빠르게 발전하는 IT 기술로 플랫폼의 다양화를 마주하고 있다. 이것을 기록한 이 책은 그 자체로 커다란 파열음이기도 하다.
이경수 중앙대학교 교수는 인공지능이 시를 창작하는 미래에 대해, “시 창작과 창작자로서의 시인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교수는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는 사랑받는 반면, 친일파인 서정주의 시는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생애의 오점을 괄호치고 온전히 시를 감상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하면서, “시가 독자들에게 일으키는 반응 효과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며, 독자들이 시를 읽을 때 “그것이 인공지능에 의해 쓰인 시임을 아는 순간, 독자가 받은 감동과 복잡한 감정의 결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
이 교수는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꿀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변화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감정지능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를 구축하고 우리 자신의 공감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일”이라며, “시의 정신에 입각해 인공지능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타자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서 인공지능 시대 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인간다운 콘텐츠가 되어야 할 문학은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뉴스페이퍼는 이경수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1. 저희는 한국문학이 주류문화에서 벗어났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취향 공동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판단하는데요. 지금 사회에서 문학이 위치는 어디라고 생각하고 있으신지요?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시는지 부정적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주류문화’라는 말을 대중들이 주로 향유하는 문화라는 의미로 한정해서 쓰시는 거라면, 한국문학이 주류문화에서 벗어났다는 진단에는 저 역시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는 ‘시의 시대’로도 불렸던 1980년대,시집의 베스트셀러 현상이 있었던 다소 예외적인 시절 말고는 대체로 주류문화는 아니었죠. 소수의 취향 공동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판단 역시 틀리지 않지만 비단 지금의 시에 한정된 경향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 더 그런 경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문학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고 전체적인 문화 현상이 그렇게 변화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취향 공동체’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의 경우, 문학작품을 골라 읽으면서도 비평가의 견해나 출판사의 추천 같은 것을 중요하게 참조했다면 지금은 어떤 권위에 기대지 않고 좀 더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읽고 싶은 작품을 골라 읽는 새로운 독자군이 출현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명한 시인/작가의 작품, 혹은 비평가나 출판사의 권위에 의해 검증된 시인/작가의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작품, 내 취향에 맞는 작품, 내 젠더 감수성에 맞는 작품을 선택해 읽겠다는 독자의 출현은 나름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평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서라고 진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상이 변했고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문학이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 역시 고민을 지속하고 있기도 한데요. 최근에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 등 한국의 영화, 드라마, K-POP 등 이른바 ‘K-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런 대중문화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 문학이기도 하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로는 보여줄 수 없는 자리, 시만이 보여주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돈을 추구하는 승자독식 사회의 구조와 인식이 훨씬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더 이상 돈을 추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실용주의가 득세하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내면화하면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나와 다른 타자, 취약한 존재들을 배제하거나 혐오하는 분위기가 한층 강해지기도 했는데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취약한 존재들끼리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야말로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며 우리가 도달한 의미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이 요구하는 논리와 속도와는 다른 시간과 속도로 살아가는 시야말로 어쩌면 이 시대에 취약한 공동체의 가치, 타자를 존중하고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가 이런 자리를 지키는 한 아직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 이 책은 문학계와 문학의 내부부터 외부까지 변화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읽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이 책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 책의 서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2016년 #문단_내_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말하기 운동을 접하면서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시를 가르치고 시를 연구하고 현장에서 비평 활동도 하며 강단에 오랫동안 서 오면서 시를 공부하기를 참 잘했다, 시를 함께 읽으며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오래 해 왔습니다. 제가 살면서 힘든 시절을 시와 함께해 오기도 했었고, 학생들의 경우에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달아가거나 시를 읽으며 위로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되면서 이런 시대에 시를 읽고 가르치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에게 즐거움과 위로와 힘이 되기도 했던 시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주기도 했고 위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그런 사실과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 괴로웠고, 예전처럼 즐겁게 시를 이야기하며 강단에 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평소 시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해 온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시를 전공하는 젊은 연구자들과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우리에게 시가 무엇이었는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이후의 시를 어떻게 읽고 말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는 최근에 여성시 앤솔로지를 구축하는 문제라든가 잊힌 여성 시인들과 시작품을 찾아 문학사에 위치시키면서 여성시문학사를 서술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 오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여성시문학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여성시를 잘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시 읽기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시를 읽어 온 방법론으로 시를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차에 마침 인공지능인문학과 포스트휴먼 담론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서 인공지능이 현실로 다가오고 인간을 넘어 포스트휴먼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시는 어떻게 읽히며 어떤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전망하는 분들이 인공지능이 우리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와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분야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시였는데요. 그것이 시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시가 그렇게 전망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그렇다면 시의 어떤 요소가, 어떤 면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일까, 어떤 시를 어떻게 읽어야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시의 자리, 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부족하나마 살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우리가 갖게 된 젠더 감수성으로는 더 이상 읽기 힘든 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최근 들어 포스트휴먼 담론이 부상하면서 인간 너머를 생각하는 사유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시론이나 시교육에 대한 담론에서는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시를 새롭게 읽어 보려는 시도는 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시론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하는 생각을 이 한 권의 책에 부족하나마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라는 제목에 ‘포스트휴먼 시대 시의 미래’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결국 우리 시의 현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이 책의 제목이나 일부 내용은 로지 브라이도티나 캐서린 헤일스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 그리고 '-되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도 담아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문단문학과 연관하여 어떤 부분에 더 주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시에 대해 살펴보면서 유발 하라리, 마사 누스바움, 로지 브라이도티,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 제인 베넷 등의 관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코로나-팬데믹을 거쳐 오면서 인류 사회가 구축해 온 문명에 대한 자성(自省)의 움직임이 있었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죠. 기후위기의 문제도 결코 단절된 개인이나 특정 국가나 지역이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고요.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 우리가 애써 일궈 온 공동체가 훼손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취약한 존재들끼리 서로 돌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사유를 보여주는 시들, 비인간을 사유하거나 인간으로서의 목소리를 얻지 못했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들, 인간의 욕망을 멈출 것을 요구하거나 ‘-되기’의 사유를 통해 인간 중심의 사유와 상상력을 넘어 보려고 하는 시들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1부 총론에서는 인공지능, 포스트휴먼 담론이 부상하는 시대에 시가 할 수 있는 역할, 시 교육이 담당해야 하는 인문학적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이야기해 보고자 했고요. 2부에서는 ‘포스트휴먼 시대 시의 변화’라는 주제로 포스트휴먼 시대의 시에 대해 논한다고 했을 때 중요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 각론의 주제들, 비주체, 젠더, 감정, 언어, 이미지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다뤄 보고자 했습니다. 3부에서는 최근 우리 시단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미 있는 변화들을 플랫폼과 독자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했습니다.
4. 하지만 아쉽게도 문학계는 다른 곳에 비해 IT기술과 매체 변화에 늦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외부적 변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선제적으로 변화하거나 나아가야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대개 인공지능이 인간이 해 온 많은 역할을 대체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혹은 다소 낙관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리 없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이런 경우에는 인간성,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인공지능 자체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한 것이기도 하겠고요. 국내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대개 기술적인 접근이 주를 이루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 논의로는 인공지능 시대가 왔을 때 초래할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들이나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책에서는 사실상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창작하는 인공지능이 점점 기술적인 성장을 하고 있고 머잖은 미래에 실제로 인류의 창의적인 활동의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한편으로는 의학의 부문에서는 인류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겠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디스토피아를 상상할 수도 있을 테지요.
다만, 여기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어떤 데이터를 축적하고 무엇을 학습하며 성장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왔는지, 우리가 구축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에 따라 인공지능이 인간과 공존하는 시대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 저희 생각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나와 다른 타자를 향해 혐오를 발산하는 이런 시대를 우리가 만든다면 결국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사태처럼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인공지능, 또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열리겠지요.
저희 책은 포스트휴먼 시대에 도래할 위기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우리가 구축한 사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공감의 원리로서 시 교육의 필요성과 그 구체적인 역할과 방향에 대해서 <아직 오지 않은 시>에서 다뤄 보고자 한 것입니다.
5. 3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5년간의 현장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바라보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간의 문예지 시스템 혹은 등단과 문학상등을 통해 이어져온 문단문학 시스템 자체의 한계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립문예지들은 그간의 문단이 흡수하지 못한 다양한 색깔과 목소리 그리고 문제에 대한 현 세대의 응답으로 보고 있으나 그 자한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경수 교수님이 생각하는 그 다음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의 문학권력 논쟁, 미래파 논쟁 등을 겪어 오면서 제가 늘 했던 생각 중 하나는 우리 문단이 제도 바깥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대에 치열한 문학 논쟁이 있었지만 사실 그것이 문학 바깥으로 확장되어 가지는 못했죠. 문학 논쟁들이 문학장 안에서만 공전하다가 동력을 상실해 갔다는 생각, 제도권 내의 문학이 완강하게 구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바깥을 사유하면서 달아나고 비어져 나오는 다른 상상력과 움직임, 다른 동력이 있다면 우리 문단이, 그리고 문학이 좀 더 활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동력이 점점 더 약해져 간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1980년대의 문학에서도 물론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무크지 문학, 노동문학 등이 제도권 문학의 장과 공존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은 부분이 있었잖아요.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 방식도 달라져야겠지만 제도권 바깥의 문학의 활력이 공존할 수 있을 때 결국 우리 문학이 좀 더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 점에서 독립문예지, 독립출판사들의 행보, 새로운 플랫폼의 시도를 눈여겨봐 왔던 것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개인의 희생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새로운 시도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문단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던 것 같고요. 용기 있는 실험적인 시도들도 제도 안으로 포섭되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던전’ 같은 플랫폼이 시도한 실험은 의미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래 못 버티고 결국 실패했다는 결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의미 있는 시도가 있었고 그런 시도를 경험한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번 제도 바깥의 동력을 맛본 독자들은 그 실험을 기억할 것이고 또 다른 형태의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될 거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예전처럼 문학 계간지를 비롯한 문학 잡지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문학청년들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과 지식인들이 <사상계>를 읽고, <창비>를 들고 다니던 시절은 아니라는 말이죠. 시절이 달라졌으니 달라진 시대에 걸맞은 다른 플랫폼들이 출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제가 구체적으로 다음 시스템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그건 지금 독자 세대의 몫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다만, 이 흐름은 일시적인 것이거나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흐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다양한 다른 형태의 플랫폼들이 나올 거고 코로나-팬데믹이 앞당긴 각종 비대면 플랫폼들에 대한 경험이 그런 변화를 더욱 추동할 거라는 예측 정도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등단 시스템에도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6. 그 외에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편하게 적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문학을 경험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왔고 코로나-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더욱 강해진 생각이기도 한데요. 유발 하라리도 감정지능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지만, 저는 앞으로의 시대에 공감능력은 너무 중요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나를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나와 다른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서로 돌보고 의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화하고 공감하려고 애쓰면서 관계에 공들임의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야말로 가장 섬세한 언어로 다름을 이야기하고 다른 상상력을 펼쳐 보이며 감정의 미세한 파동까지도 담아 보려고 하는 문학 장르라는 점에서, 시를 읽는 교육, 시를 통해 공감 능력을 키우고 감정을 체험하고 느껴보는 경험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시의 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꿔 보면서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우리 시의 미래에 대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 달라는 말씀을 끝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 뉴스페이퍼 2022.03.11
/ 2022.03.1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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