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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사이보그 -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가 미래에도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을까? (2022.03.17)

푸레택 2022. 3. 17. 08:22

사이보그 - Daum 백과 경계의 융합, 사이보그

 

사이보그

포스트휴먼 단계에서는 모든 상상력이 허용될 것 같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넘어 종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질 것으로 상상된다. 포스트휴먼에 대한 상상에는 비단 소설가나 창작자들뿐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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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사이보그 - 경계적 존재, 몸은 상상의 네트워크다

포스트휴먼 단계에서는 모든 상상력이 허용될 것 같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넘어 종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질 것으로 상상된다. 포스트휴먼에 대한 상상에는 비단 소설가나 창작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 철학자들까지도 합세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미래사회 인간에 대한 상상은 과학기술과 긴밀한 연관관계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가 미래에도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을까?

과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미래에는 다양한 종들의 DNA를 보관하는 도서관도 생길 것으로 상상한다. 그는 미래사회에서는 "다양한 종이 형성될 것이고 인류는 점차 다양한 유전적 자질을 가진 사람들로 분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인간 뇌는 고래·코끼리·호랑이·침팬지 등과 통합되며, 기억과 의식이 더 큰 마음으로 합쳐질 것이라고 한다. 과학기술 발달은 이제까지 인류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몸의 경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보그 그림은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1991)의 책표지에 실린 그림이다. 책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유인원과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주제로 한 책인데, 그 조합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으며, 이 의문은 그림으로 더욱 가중된다. 인간과 동물, 사이보그가 혼합된 양상이 뭔가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인도해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 과학사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인 도나 해러웨이이고,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린 랜돌프다. 린 랜돌프는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에 관한 에세이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사이보그'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그려 해러웨이에게 보냈다. 따라서 이 그림의 상상적 이미지들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보그 여성과 동물과 기계가 결합된 사이보그 이미지, 린 랜돌프, 1989년

사이보그 그림은 얼핏 보기에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여하튼 그림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인간 형상을 하고 있는 개체다. 그런데 진짜 인간일까? 인간이라기엔 뭔가 애매하다. 분명히 얼굴은 인간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손은 뼈 골격이 드러나 보여 어딘지 인간 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가슴에는 문서이미지 처리장치 보드가 달려 있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매개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분명히 유기체 생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장치는 이 개체가 컴퓨터로 조정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녀 위에 있는 백호 또한 마찬가지다. 백호는 머리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손과 마찬가지로 앞다리의 뼈 골격이 훤히 들여다보여 마치 살아 있는 박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두 개체는 동시에 전방의 중심을 응시하고 있다.


여성의 모습을 한, 아마도 사이보그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인물을 살펴보자.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가 동양인이라는 것이다. 작가인 린 랜돌프는 이 그림이 사이보그를 구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림 속 여성은 제 3세계 페미니즘을 암시하는 중국 여성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별로 특별하지 않은 제3세계의 보편적 인물로 보이는 이 여인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지구 표면을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기고 있다. 여기서 컴퓨터 자판은 마치 사이보그와 지구표면의 지질학적 지형도 사이를 매개하는 듯하다. 그녀 뒤로 보이는 광경 또한 심상치 않다. 드넓은 우주. 그런데 그 위에 그림이 걸려 있다. 그곳에는 우주 은하수의 소용돌이와 블랙홀 형태로 보이는 중력장의 움직임,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수학 기호와 계산, 상징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들과 함께 사이보그 여성의 캐릭터는 더욱 더 그 범주가 커져간다. 보편적 인물의 형상은 인간이자 유기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타자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작가 내지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라고 볼 수도 있다. 동시에 수학적 이미지와 천문학적 이미지들의 혼합과 함께 수학자, 과학자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지구라는 대상을 매개하는 인물로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컴퓨터 자판은 도시 건물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과 지구의 정신적인 지도자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아니면 단순히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사이보그 여성은 개인이라는 하나의 개체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에 이 모든 캐릭터들을 내포한 집합적 개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러웨이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가 말하는 사이보그는 경계적 존재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배제되어왔던 존재들을 지칭한다. 그림 '사이보그'는 사이보그의 경계들을 나타낸다. 그림은 수많은 경계들의 혼종 상태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동물과 인간, 그리고 기계의 경계다. 호랑이 모습과 인간 모습, 하지만 그것은 또다시 기계 모습과 연계된다. 이와 함께 하늘과 땅의 경계가 나타나고, 대자연이라는 자연적 대상과 그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라는 인위적 대상의 경계가 나타난다. 그림 한편에 피라미드 형상이 보인다. 이 또한 하나의 경계다. 고대 파라오의 무덤이었던 피라미드는 무덤이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계속 살아남고자 하는 미라의 육체를 보존하는 공간이다. 영혼의 세계와 현실계 사이의 경계인 것이다. 그리고 마치 그 손모양이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연상케 하는 사이보그 여성은 그 사이에 선 경계적 존재다.

인간은 어떻게 우주공간에서 광속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까?

경계적 존재란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괴물'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모두 보이도록 형성된 존재다. 사실 괴물을 뜻하는 'monster'와 보여주다의 의미를 지닌 'de-monstrate'는 어간이 같다. 이러한 괴물의 이미지는 마치 신성모독처럼, 인간 존재에 대한 신성한 믿음과 인식을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결국 이러한 새로운 존재는 "유기체인 인간과 과학기술과 공학 간에 불법적으로 탄생한 서출이다." 기존의 스핑크스가 영혼의 세계와 현실계 사이에 양발을 걸친 괴물이었다면, 그리고 그 존재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이 사이보그 또한 인간과 과학 사이에 양발을 걸친 괴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경계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미래에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 종들의 경계는 사실상 무의미해질 것이며 이러한 경계의 해체가 기존 사회적 질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러웨이는 미래 사이보그 사회는 남성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성차별이 없는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녀는 과학기술 시대의 사이보그론을 주장하면서, "우리 모두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다"라는 사이보그 선언을 했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론은 사이보그가 단순히 과학기술 시대에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혼종이거나 또 다른 인간유형이라는 관점을 넘어선다. 사이보그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인간이 가졌던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자신을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인간은 절대로 기계보다 뛰어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나아가 동물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도 자만할 수 없다. 해러웨이는 "나는 결코 인간이 아니었고, 인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기존의 인간 개념이 아닌 새로운 포스트휴먼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이보그를 포스트휴먼 시대의 여성 정체성으로 과감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과학기술적인 것을 거부하고 자연이나 절대적인 인간성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추구한 것에 비해, 해러웨이의 페미니즘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현실에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포스트휴먼 단계에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경계들이 와해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상상과 실재의 경계가 점차 좁혀진다는 것이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유기체와 기계의 이분법,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 등 전통적 인식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해체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차이와 경계의 문제를 사이보그뿐만 아니라 개를 포함한 인간의 동반 종인 애완동물로까지 확대시킨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모든 생물 종을 인간과 더불어 진화하는 것으로 본다. 사이보그, 동물과의 경계가 해체된다는 것은 자연, 문명의 이분법조차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동반종 선언(Companian Species Manifesto)'이다. 2003년 해러웨이는 20세기 후반의 사이보그론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고 판단해 또 다른 상상적 선언으로 이것을 선포한다. 그녀는 인간과 기계, 동물 사이의 경계를 없애 서로가 동반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 선언은 반려동물로서의 애완동물을 동반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과연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없애기를 선언했다. 미래 사이보그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종들 간의 교배, 성의 혼성화, 인간 이외 다른 종과의 결합이 생명의 자연스러운 법칙, 미래 현실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 속에서 상상되었던 인어공주, 반인반마, 반인반수가 미래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다시 사이보그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백호는 사이보그와 같이 있고 그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동반 관계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비록 이 그림이 사이보그를 표현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것은 동반종 선언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백호의 위치가 미묘하다. 백호가 그녀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래 있는 것도 아니고 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 위에서 그녀를 감싸 안는 모양으로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동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미지인 백호, 동양인 여성을 공존시키고 있는가. 여기서의 백호는 야수성을 지닌 동물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존재에 가깝다. 실제로 백호는 성스러운 동물이기도하며, 그렇다면 머리에 있는 백호는 사이보그 정신과 이어지는 하나의 매개라고 볼 수도 있고, 이는 일종의 명상 장치 같은 기계 형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이 그림을 인간과 동물과 기계가 정신적 세계와 이어지는 새로운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그림은 모든 경계적 존재들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허물어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그림으로도 볼 수 있다.

글=허정아 연세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마르세유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파리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예술기획경영, 디지털아트를 가르치고 있으며, 미디어아트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상상력개발센터장으로서 상상력 콘텐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출처]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허정아, 21세기북스) 다음백과

/ 2022.03.17 옮겨 적음

https://youtu.be/dKuCG6cv854

https://youtu.be/QBVFpZ27F-4

https://youtu.be/RGx7SHL0w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