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십리' 걸음걸음 봄이 밟히네 (2022.03.15)

푸레택 2022. 3. 15. 20:08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십리' 걸음걸음 봄이 밟히네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십리' 걸음걸음 봄이 밟히네

땅끝, 달마의 길을 걷다이름처럼 달을 마중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달마의 길' 성난듯 산을 오르는 달마산 바위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으로 내려오던 백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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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듯 산을 오르는 달마산 바위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사십리' 걸음걸음 봄이 밟히네

땅끝, 달마의 길을 걷다
이름처럼 달을 마중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달마의 길'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의 한줄기가 덕유산에서 서진, 호남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도로 치닫던 호남정맥의 기세는 월출산과 두륜산을 지나 해남의 땅끝 달마산(達摩山)에 이르렀다. 바다를 만나 제 기운을 주체 못하고 하늘로 치솟은 봉우리는 숨이 가쁘다. 달을 마중한다고 해서 달마던가. 아니면 진리의 깨달음인 다르마(dharma)인가. 호남의 땅끝 달마산에 ‘구도의 길’ 달마고도(達摩古道)가 있다. 오롯이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길이다. 스님은 지게를 지고, 돌을 쪼개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노력으로 업을 풀어냈다. 미황사(美黃寺) 주지인 금강스님이 기존의 길 9㎞에 일체의 중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호미와 삽, 지게만 사용해 만든 새로운 길 9㎞를 이어 17.7㎞의 길을 만들었다. 이름처럼 달을 마중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중의(重義)적인 달마의 길이다.


도솔암 가는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도솔암에 오르다

삼마리에서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길이다. 우측은 산길을 따라 오를수록 낭떠러지의 경사가 심해져 아찔하다. 달마산 불선봉(489m)은 높지는 않으나 규암으로 이뤄진 봉우리와 바위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불상처럼 화엄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공룡의 등뼈처럼 굴곡진 산등성이 암석은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소형차 10여대를 댈만한 조그마한 도솔암 주차장에 이르렀다. 멀리 땅끝 바다는 안개와 해무, 미세먼지가 자욱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암괴석들 천지다. 표지판을 보니 도솔암이 0.7㎞이고 미황사가 4.7㎞다. 도솔암 가는 길엔 뾰족한 바위들이 산을 기어오르듯 잔뜩 힘을 넣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마치 거센 바람에 파도가 일어나듯 잔뜩 성이 나 있다.

도솔암.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도솔암이다. 통일신라 말 의상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이곳에서 불법을 수행정진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흔적만 남았던 것을 2002년 복원한 암자로 미황사의 열두 암자 중의 하나다. 도솔암에 서서 땅끝 남해를 바라보니 안개에 묻힌 바다가 금세라도 안개가 제치며 모습을 나타낼 것만 같다. 발밑으로 펼쳐진 화엄(華嚴)의 세계에 세상의 근심 걱정을 한순간 바람에 날려 보냈다. 도솔암에서 50미터쯤 내려가자 암자를 받치는 큰 바위 밑에 마르지 않고 흐르는 용담(龍潭)이 있다. 용이 천년을 살다 하늘로 승천했다는 샘으로 바위틈에서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샘솟고 있다. 달마고도를 걷기 위해서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사람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마주 올라오고 있다. 인사를 나누며 조금만 힘내라고 덕담을 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도솔암에서 400여미터를 내려와 달마고도와 만났다. 도솔암은 달마고도를 품지 않았기에 살짝 들렀다가 고도로 들어섰다. 

 

미황사 가는길, 달마고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미황사 가는 길

달마고도는 총 4코스 17.7㎞이니 만만한 길은 아니다. 도솔암에서 출발하는 길은 달마고도 4코스 ‘천년의 숲을 따라 미황사 가는 길’의 일부로 미황사까지 3.7㎞가 된다. 많은 이들이 미황사쪽에서 오는 바람에 가는 길 내내 마주했다. 대부분 미황사에서 달마고도를 타고 도솔암까지 가는 코스를 잡은 모양이다.

달마고도 석림(너덜겅).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줄줄이 이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봄이 본격적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노간주나무와 삼나무 지대를 지났다. 봄에 들어섰어도 아직은 기온이 쌀쌀하다. 오전 11시부터 걸었는데 오후가 되면서 점점 기온이 올라 그나마 얇게 입고 온 후회를 덜 수 있었다. 동백은 아직 추운 길 위를 점점이 붉게 장식했지만 후두둑 떨어져 서러운 것을 아직 느끼지는 못하겠다. 봉우리 칼끝처럼 솟은 바위 규암은 수억년의 신비를 간직하고 쏟아져내려 너덜지대 석림(石林)을 만들었다. 산 위에서부터 아래로 쏟아져내린 암석들은 군상을 이루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손수 길을 다듬고 돌을 맞춰 깔아 길벗들이 걷기 좋게 만들어놓은 수고한 이들의 노고가 보인다.

산산히 흩어진 동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동백꽃 흐드러진 미황사

임도를 만나 따라가니 부도전과 부도암이다. 부도전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부도를 한데 모아놓았다. 조선 중·후기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큰 스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 32기가 모셔져 있다. 모두 귀중한 분들이다. 부도에 새겨진 거북이, 두루미, 토끼 등 다양한 동물들의 문양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부도암 앞마당 축대 밑으로 미황사의 창건설화를 기록한 미황사 사적비가 있다. 화강암으로 된 사적비의 비문은 조선 숙종 때 성균관대제학을 지낸 민암과 당대의 명필 이우가 썼다. 크고 웅대해서 예전 미황사의 크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부도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미황사 동백은 짙고 붉은 꽃잎을 흩뜨렸다. 미황사는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로 신라 경덕왕 때 의조(義照)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대웅전 지붕을 넘어 펼쳐진 달마산의 솟아있는 암봉들이 마치 부처님의 현신 같다. 미황사가 있는 곳은 땅끝이다. 길의 끝은 마지막이지만 다시 출발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9.03.07

/ 2022.03.15 옮겨 적음